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중국 토종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가 지난 7월말 베이징 국가회의중심에서 진행한 노트북 신제품 발표회장. 이날 발표회장 중심구역 좌석을 꽉 채운 건 100여명의 아리따운 ‘미녀군단’이었다. 이들은 레이쥔 샤오미 회장이 직접 손에 노트북을 들고 시연하는 데도 다른 관중들처럼 박수 치지 않고 환호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 앉아 셀카 조명을 켠 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스마트폰 화면 속 '팬'들과 실시간 라이브 방송 채널로 교류하며 샤오미 노트북을 소개한 게 전부다.
이들은 바로 요새 중국에서 기업 신제품 발표회를 하는 데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왕훙(網紅)’이다. 기업들의 각종 신제품 발표회엔 언제나 왕훙이 대거 참석한다. 사회자의 축사엔 왕훙의 이름과 함께 "OOO 감사합니다"는 말이 빠지지 않을 정도다. '왕훙이 없는 신제품 발표회는 망한다'는 말이 중국 기업인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가 됐다.
◆판빙빙보다 많이 버는 왕훙
왕훙은 직접 동영상을 제작해 폭발적인 클릭 수를 자랑하고, 패셔니스타로 이름을 알려 온라인 패션 몰을 차리는가 하면, 인터넷 '얼짱'으로 활동하며 제품을 소개해 떼돈을 벌어들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인터넷에 수십 수백만, 많게는 수천만 명의 팬층을 보유하며 온라인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중국 왕훙경제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에서 왕훙을 활동하는 인구는 100만 명이 넘으며, 팔로워 수는 3억1000만 명이 넘는다. 이중 90%는 대부분 얼짱 출신 ‘미남미녀’다. 왕훙을 연예인처럼 키우고 관리해주는 기획사만 100여 곳이 넘는다.
올해 30세로 중앙희극학원 연출과 석사를 마친 ‘파피장(Papi醬)’. 그는 지난 해부터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5분짜리 짧은 동영상을 직접 만들어 올렸다. 대부분이 연애, 결혼, 일, 다이어트 등 일상생활을 주제로 혼자서 5분간 웃고 울고 떠드는 동영상인데 이게 젊은 층 사이에서 대박을 쳤다.
현재 그의 웨이보 팔로워 수는 1900만 명에 육박한다. 그가 웨이보에 공개한 69개 동영상 클릭건수는 2억5000만 건에 육박한다. 지난 3월엔 투자자로부터 1200만 위안(약 19억원) 투자를 받은 데 이어 4월엔 자신의 동영상 방송에 들어갈 광고를 경매에 부쳤는데 낙찰가가 최고 2200만 위안에 달했다.
얼짱 잡지모델, 온라인쇼핑몰 모델로 활동했던 올해 29세 장다이(張大奕)도 인기 왕훙 중 하나다. 그는 2014년 아예 타오바오몰에 직접 온라인 쇼핑몰을 차렸다. 초기 웨이보 팔로워 수 20만명에서 현재 400만명을 넘어섰다.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쇼핑몰 매출은 3억 위안으로 타오바오몰 전체 패션쇼핑몰 2위를 차지했다.
장다이가 지난해 벌어들인 수입은 중국 국민 여배우 판빙빙 수입의 두 배에 달할 정도로 유명 왕훙들은 웬만한 연예인이보다도 수입이 많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해 왕훙들이 벌어들인 수입은 모두 580억 위안(약 9조6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 한해 중국 박스오피스 수익(440억 위안)을 뛰어넘는다. 영국 BBC가 지난 달 초 ‘돈 잘 버는 인터넷스타: 왕훙 열풍’을 소개했을 정도다.
중국 대학생 주링우허우(95後·1995년 이후 출생세대)의 60% 꿈이 왕훙이 되는 것이라는 텐센트 빅데이터 분석 보고서 결과가 별로 놀랍지 않은 이유다.
◆ '왕훙'없는 마케팅 "상상하기 어려워"
현재 중국 대륙은 ‘왕훙 경제’로 들썩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훙 경제는 왕훙들이 팬들을 통해 창출하는 경제적 잠재력과 파급력이 커지면서 생겨난 신조어다.
특히 패션 산업은 왕훙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분야다. 지난해 타오바오몰 여성 패션 부문 매출 톱 10위에 오른 상점을 살펴보면 장다이(2위)를 비롯해 자오다시(6위), 장차오린(9위)등 왕훙 5명이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장다이의 경우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지난해 11월 11일 솔로데이 하루에만 우리나라 돈으로 98억원 어치 물건을 파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에는 패션뿐만 아니라 온라인게임, 여행, 육아, IT 분야 등으로 왕훙 비즈니스가 확대되고 있다. 왕훙이 소비자와 상품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해주면서 기업의 마케팅 채널로 부각되고 있는 것.
중국 온라인여행사 취날왕은 지난 5월 중국 8대 유명 관광지에 왕훙 10명이 직접 가서 실시간으로 놀고 먹고 구경하면서 현지 관광지를 소개하는 내용을 온라인 라이브 방송 플랫폼으로 내보냈다. 총 3시간씩 모두 16차례 생방송된 프로그램 시청자 수는 모두 1000만 명에 달했다.
중국의 한 자동차 기업은 신차 발표회에 왕훙 100명을 초대했다. 이들은 현장에서 직접 차를 체험하고 소개하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촬영해 온라인에 올렸는데, 생방송을 시청한 누리꾼 수는 수백만 명에 달했다.
세계적인 화장품업체 비오템도 최근 중국 홍보 행사에 왕훙 30여명을 초청해 라이브 방송으로 내보내는 등 글로벌 기업들도 왕훙 마케팅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나라 유통업체들도 추석·국경절 연휴 앞두고 왕훙 마케팅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왕훙을 모셔오는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베이징만보에 따르면 기업 행사에 왕훙을 한번 섭외하는 데 드는 비용은 왕복 항공권과 호텔비를 제외하고 1명당 최저 1만 위안(약 164만원)이다. 중급 수준의 왕훙은 5만~10만 위안, 유명한 왕훙의 경우엔 10만 위안이 넘는다.
◆왕훙 MBA, 왕훙 기획사…18조원 산업형성
왕훙경제는 이제 거대한 산업체인을 형성하고 있다. 자오상증권은 왕훙을 통해 생성되는 시장 규모가 1000억 위안(약 18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왕훙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기획사에서부터 왕훙 창업 인큐베이터, 왕훙 비즈니스를 교육하는 왕훙 전문 MBA, 왕훙 산업기지, 왕훙 라이브 방송 플랫폼까지 활황세다.
최근 광둥성 광저우에는 5000㎡ 규모의 '제1호 왕훙 산업기지'도 짓는 중이다. 시 정부가 직접 나서서 설립한 것으로 3년내 향후 30억~50억 위안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인터넷기업 텐센트도 최근 저장성 진화시에 아예 '왕훙빌딩'을 만들었다. 왕훙경제를 중심으로 한 창업단지다.
왕훙하면 온라인 라이브방송 플랫폼도 빼놓을 수 없다. 왕훙이 실시간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주무대이기 때문이다. 왕훙경제 열풍 속에 중국 온라인 라이브방송 플랫폼도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 현재 200개가 넘는다. 잉커, 슝마오, 더우위, 후야 등 온라인 라이브 방송 플랫폼이 급성장하면서 텐센트·모모·샤오미·유쿠 등 인터넷기업들도 속속 온라인 라이브방송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 최대 온라인쇼핑몰 타오바오몰이 올 들어 라이브 방송 서비스를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장다이는 지난 6월 타오바오몰 쇼핑 2시간 생방송에서 마치 홈쇼핑처럼 직접 신상품 50종을 소개햇는데, 2시간 만에 거래액 2000만 위안을 돌파했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도 이미 라이브 방송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중국 국민 모바일메신저 위챗도 라이브방송 기능을 개설하는 것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이 만든 스타…거품 우려도
왕훙은 6억 명에 육박하는 중국 스마트폰 이용자를 바탕으로 한 모바일 기술 발달로 1인 미디어 환경이 조성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라이브 방송산업 발달로 누구나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동영상을 올리고 내려받을 수 있다는 점도 한몫 했다. TV나 영화로만 접할 수 있는 연예인보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왕훙이 소비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점도 매력적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왕훙경제에 거품이 끼어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한 업계 인사는 신제품 발표회에 왕훙을 초청해봤자 실제 매출효과가 드물다며 왕훙 경제에 거품이 과도하게 끼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왕훙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미녀’,’성형수술’일 정도로 왕훙이 얼굴로 먹고 산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왕훙 경제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진정한 컨텐츠로 승부하는 왕훙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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