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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저런 것들은 당장 사형을 시켜버려야 돼.” 추석에도 끊이지 않는 강력 범죄 소식을 접했을 때 한 자리에 모인 가족 중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여럿은 “그러게 말이야”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던 것 같다.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동의할 만한 일이었다고 치자.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필리핀에서는 대통령이 심정적인 동의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저런 것들을 당장 사형시키라”고 지시하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대적인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저런 것들‘로 마약상을 지목한 것이다. 이것은 진짜 전쟁이 됐다. 필리핀 경찰과 군대, 자경단들은 마약 용의자들에 진짜 총부리를 들이대고 죽이고 있다.
6월 말 두테르테 취임 후 3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약 용의자로 지목되어 즉결 처형되었다. 여전히 두테르테는 초법적 사살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가 우려하자 “네가 뭔데 참견이냐”며 귀를 닫았다.
정의의 사도가 되겠다는 순수한 의지로 시작된 것이라도 강력한 권력이 소수에 집중될 때 얼마나 쉽게 독재와 부패로 변질되는지, 카리스마로 포장된 지도자가 얼마나 무서운 칼을 숨기고 있었는지 우리는 이미 숱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미 두테르테가 자신의 정적을 공격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과거 두테르테 밑에서 자경단으로 활동했던 마토바토는 지난주 청문회에서 “범죄자뿐 아니라 두테르테 집안의 반대파를 죽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테르테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있노라면 씁쓸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다. “속이 다 시원하다” “두테르테 도입이 시급하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범죄에 대한 분노,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 차별없는 정의의 실현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임을 이해한다.
하지만 나라의 지도자가 앞장서 살인을 조장하는 상황, 마약상을 향하던 총이 언제 무고한 시민을 향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까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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