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W' 송재정 작가, 두 개의 세계 "이종석 고맙고, 한효주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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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9-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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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의 송재정 작가[사진=MBC 제공]


아주경제 정진영 기자 = 작가 송재정(43)에게는 두 가지 세계가 있다. 그가 발을 딛고 선 땅이 첫 번째고 상상으로 만들어 낸 허구의 세상이 두 번째다. 송재정은 이 사이에서 두 세계를 치밀하게 조화시킨다. 그가 집필한 작품에서 주인공은 의지에 따라 차원을 넘기도 하고 향을 피워 시간여행을 하기도 하지만 결코 비현실적이지만은 않다. 시한부, 가족을 죽인 진범 찾기 등 지독히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 작가가 그리는 상상의 세계는 가끔 불친절하지만, 대개 많은 이들을 납득시키고 만다. 마치 그의 작품 'W'처럼.

MBC 드라마 'W'에는 두 가지 세계가 등장한다. 웹툰 'W'의 주인공 강철(이종석 분)이 사는 만화 속 세상과 그 만화를 보며 자란 의사 오연주(한효주 분)가 사는 현실이다. 드라마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시청자의 마음처럼 오연주는 자신이 오랫동안 지켜본 만화 속 주인공 강철과 만나 현실과 만화의 세상을 넘나들며 사랑과 모험을 한다.

시간여행을 다룬 tvN '인현왕후의 남자'와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을 통해 이미 퍽 그럴듯한 판타지 세계를 창조해낸 송재정 작가는 이번엔 만화와 현실을 넘나든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에 힘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W'는 극에서 강철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맥락이 있는' 세계였다.

"작품에 찬사를 보내주는 것 자체가 어리바리해요. 두 달 동안 작업실에만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칭찬을 받으니 정신이 없어요. (이 상황이) 현실로 믿어지지가 않아요."
 

[사진=MBC 제공]


웹툰 'W'의 작가 오성무(김의성 분)가 그랬듯 송재정 작가는 한 자루 펜으로 거대한 세상과 인물을 창조해냈다.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은 것도 그다. 하지만 송 작가 스스로도 "'이렇게 써야겠다' 해서 써지는 게 아니라 나도 쓰다보면 어느 순간 스토리를 따라가게 된다"고 고백했듯 작가가 만든 세상을 채색하는 건 배우와 스태프들의 몫이다. 그래서 그는 오연주를 연기한 한효주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한효주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평가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냥 그 배우에게 너무 미안해요. 뛰는 장면, 우는 장면이 너무 많았고 감정소모도 너무 컸을 거예요. 한효주에 대한 미안함은 작품 끝까지 제가 갖고 있었어요. 정말 저도 밝은 걸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스토리대로 가다 보니 후반부에 힘든 신이 많았을 거예요. 참 안타까워요. 저도 두 사람(강철-오연주)이 알콩달콩 하는 걸, 마음 편히 연애하는 걸 좀 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이종석에겐 "고맙다"고 했다. 그는 "초기에 내가 복 받았다고 (이종석에게) 문자도 많이 보냈다. 이종석이 만화처럼 안 생겼으면 어쩔 뻔했나. 사실 이 작품은 만화같이 생긴 사람을 찾는 게 중요했는데 이종석이 그 부분에서 어마어마한 리얼리티를 부여해줬다. 그걸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웃었다.

시작은 고야였다. 지난해 스페인에 갔다가 평소 좋아하던 화가 고야의 작품을 보다 영감을 얻었다. 그는 "그림을 영상으로 표현한다는 게 힘들어서 대중적인 만화로 우려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 결과물이 웹툰이자 드라마인 'W'다.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삼총사', 그리고 'W'까지. 이미 정극 작가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그의 뿌리는 시트콤이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오랜 기간 방영되며 큰 인기를 누린 SBS '순풍산부인과'가 그의 시작이었다. 이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MBC '거침없이 하이킥', '크크섬의 비밀' 등 당대 최고 인기작들이 뒤따른다. 이를 알고 나면 만화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는 엉뚱한 상상이 어떻게 시작됐는가를 흐릿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시트콤에 불만이 있어서 정극으로 온 건 아니에요. 그냥 안 해본 걸 해 보고 싶었어요. 새로운 장르요. 일반 드라마를 한다고 했을 때도 사랑이나 이런 것보다는 희한한 걸 해 보고 싶어서 소재를 특이하게 잡았어요."

그렇게 시간여행, 차원이동 등의 설정이 생겨났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시간여행을 시작한 기자가 팩트(fact)가 아닌 판타지에 의존해 남은 시간을 보낸다는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과 인현왕후의 복위를 위해 300년을 거슬러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조선시대 선비 김붕도(지현우 분)가 2011년 드라마 '新장희빈'에서 인현왕후 역을 맡은 무명 여배우 최희진(유인나 분)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의 '인현왕후의 남자' 등으로 송재정은 '개연성 있는 판타지'를 쓰는 작가로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런 '개연성'이 'W'에선 흔들렸다. 만화의 주인공이 바뀐다거나 웹툰을 그린 작가가 작품 속 캐릭터에 얼굴을 빼앗긴다거나 하는 설정들은 때로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부 시청자들은 'W'를 '작가만 아는 드라마'라고 손가락질 했다. 하지만 송 작가는 이를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할까요.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보면 매우 자유로운 리얼리즘을 추구해요. 요 몇 년 사이에 그런 것에 꽂혀 있었어요.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때까지만 해도 논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거든요. 판타지지만 논리성을 중시한 거죠. 그런데 이제 그런 방식은 트렌드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보다는 개인의 사고에 의해 상황이 바뀌는 자유로운 표현방식이 더 유효하지 않을까 싶어요. 'W'는 그 초기 단계에서의 실험이라고 봐 주시면 감사할 것 같고요."
 

[사진=MBC 제공]


풀어 말하자면 특정 설정에 대한 '설명'을 '건너뛰는' 게 송재정 작가가 생각한 앞으로의 트렌드다. 송 작가는 "'인현왕후의 남자'를 할 때 내부에서 '아무리 판타지라도 이게 말이 돼?'라는 반응이 있었지만 막상 방영이 되니 시간여행을 하는 부적의 원 리같은 것들을 다 설명을 안 해도 시청자들이 넘어가더라"며 "삼각관계, 사각관계, 재벌 등이 나오는 드라마를 볼 때 시청자들이 인물만 보고도 구조를 파악하는 것처럼 판타지도 그 단계가 아닐까 싶다. 'W' 역시 초반에 그런 논리적 설명들을 많이 생략했는데도 호응도가 높았다. '아 이제 이런 게 먹히는 사회에 접어들었구나' 했다"고 설명했다.

"이제부터가 큰일이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웃었지만 송재정 작가는 자신이 말한 이 흐름대로, 아주 자유롭고 맥락 있는 세상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인터뷰 초반 그는 "제일 무서운 게 과소평가보다 과대평가인 것 같다"고 했는데, 이는 작가가 다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려는 부담 내지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곧 송재정의 두 가지 세계가 치열하게 부딪히면서 새로운 상상이 탄생할 것이고, 그는 자신이 결코 '과대평가' 된 것이 아님을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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