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북핵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역할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공조를 모색했다는 소식은 없다. 중국이 역할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열쇠를 중국이 쥐고 있다는 인식에 변화가 없다.
이는 한미일 3각 공조만으로는 제재의 효과를 충분히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 인식을 반증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현 시점에서 중국 역할에 대한 기대를 표면화하지 않는 배경에는 한중관계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차라리 북핵문제에 대한 소위 ‘중국역할론’을 냉철하게 검토해 볼 기회인 것이다.
이 교수는 한·중 간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을 우려하면서 현 한·중 관계를 ‘외화내빈(外華內貧·겉은 화려하나 속은 텅 비어 있다)’에 비유했다.
◆ 한·중 관계의 현주소는 어떤가?
“한마디로 ‘외화내빈’이다. 중국은 5차 북핵 실험에도 여전히 ‘한반도의 안정’ 확보에 방점을 두고 있다. 겉으로 보면 24년간 한·중 관계가 짧은 시간 내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내실화가 돼 있지 않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동안의 성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형태다. 이런 파열은 예견돼 있던 거다. 이명박 정부 때 한·중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은 두 가지 이슈 때문이다. 북핵문제와 한·미 동맹문제가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중 관계가 최고라고 다들 평가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집권 2~3년 동안에는 이 두 가지 이슈를 아예 손도 안 댔다. 항상 잠복돼 있던 문제인 것이다.
그러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면서 잠복돼 있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사실상 최상의 관계라는 한·중 관계는 ‘동상이몽’이다. 처음 박근혜 정부 들어 한·중 관계에 대한 새로운 수사를 붙이려 했었다.
당시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양국 관계에 대한 수사가 붙여질 때 양국 간의 전략적 이슈가 딱 이 두 가지인데 ‘이제 이 이슈를 제대로 다루면서 서로의 신뢰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하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현 상태에서 걸림돌이 됐다.”
◆ 양국 관계가 최고라고 평가될 만한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는 중국 전승절을 기해 열병식에 다녀오면서 중국에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줬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중국의 북한에 대한 압박과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지를 기대한 것이다.
중국 역시 시진핑 정부가 북한과 조금 소원해지면서까지 한·중 관계를 좋게 만들었던 동시에 전승절에 참가한 박 대통령에게 최고 예우를 해줬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게 된 것이다.
서로 다른 과잉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중 간 별 이슈가 없었을 때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북핵 실험이란 이슈가 터지니 서로에 대한 다른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 표출된 것이다.”
◆ 사드에 대한 양국의 견해 차이의 근간에는 무엇이 있을까 ?
“중국은 ‘한국을 잘 압박하면 한국이 사드 배치를 유보하거나 지연시킬 수도 있겠다’라는 희망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우리는 ‘중국이 (사드 배치 이유를) 잘 몰라서 오해하고 있고 설명하면 중국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희망적 사고를 하고 있다.
사실상 한반도의 사드 배치는 시진핑 정부 입장에선 외교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북한과 소원해지더라도 한국을 끌어들여서 미국의 아시아 전략인 ‘리밸런싱(재균형)’에 대응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했고, 미국의 재균형 전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게 됐다.
아울러 북한과의 관계도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이런 면에서 시진핑 정부 입장에서도 굉장히 큰 딜레마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 중국이 한반도에 사드 배치를 허용할 가능성은?
“사드는 시진핑 어젠다가 됐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이 이를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열쇠인 것 같다. 중국 입장에선 중요한 전제가 한국에 있다기보다 미·중 관계에 다양한 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이 양보적 측면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날 경우 중국이 (사드 배치를) 허용할 가능성은 있다. 시진핑의 핵심문제 중의 핵심인 센카쿠 열도 문제를 사실상 접은 것만 봐도 그러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압박하는 양상으로 갈 경우, 상황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우리가 북한도 압박하지만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북핵문제 등에 대한 역할을 하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기보다 중국 자체를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문제다.
아직은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드 배치에 따른 제재 언급을 하지 않았다. 중국이 지켜보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한·미 모두 정치적으로 유동적인 상황이고 중국 역시 사드 배치로 한·중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중 관계를 잘 만들려는 것도 시진핑 어젠다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스스로가 쌓은 공든 탑(한·중 관계)을 와르르 무너트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중 관계를 전면적으로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사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런 면에서 중국도 딜레마이긴 마찬가지다.”
◆ 미국 대선이라는 변수가 있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서 한·중 관계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중국에 있어 한반도에 사드라는 무기가 들어오는 것도 문제지만 사드 배치를 계기로 한국이 어떤 생각을 가질지, 중국은 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으려는 것 같다.
한·중 관계는 상당히 만성적 긴장이 존재하는 관계로 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한 관련 이슈에 대해선 우리가 중국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긴 어려워지고,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미·일 동맹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구조를 만들기 어려워질 것이다. 일부에선 이를 신(新)냉전이라고 하지만 그런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 한반도 지역에서 신냉전이 시작된다고 지적했는데?
“과거와는 달리 강대국들이 직접 부딪치지 않고 다른 나라들을 내세운 대리경쟁으로 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전면에 한국을 내세우고 중국은 북한 등 다른 주변국들을 끌어들여서 이를 막아내려 할 것이다.
한국으로선 북한문제, 통일문제가 점점 어려워질 테고, 미·중 강대국 간 경쟁의 딜레마 소용돌이에 빠질 측면이 크다.
사실 이미 우리는 선택해야 할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우리 외교는 의도하지 않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대목도 존재한다. 우리 내부의 고민이 굉장히 필요하다.
외교의 중요성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높다. 외교가 국내 정치에 동원되거나 이용되는 경우가 농후해짐에 따라 장기적 전략 구상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강대국 간의 게임에 자꾸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국가적 어젠다를 설정하고 장기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정책결정자들이 고민해야 한다.”
◆ 중국이 바라보는 한·미동맹에 대한 생각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없나?
“중국도 마지노선이 있을 것이다. 한국과의 수교는 한·미동맹 하에 있는 한국과 맺은 것이다. 중국이 인정한 한·미동맹의 범위는 북한의 도발을 막아내고 좀 더 확장하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억제할 수 있는 요소까진 상정한 것이다.
다만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한국이 동원되거나 활용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입장이 한·미동맹에 의지해 중국과의 관계를 항시적 긴장관계로 가져가거나 강대국 간의 대립구도를 만드는 등의 상황을 원치 않는다면, 한국이 중국에 지속적 메시지를 줘야 한다.
한·미동맹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함께 이러한 현실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다. 사드에 중국이 발끈하는 것도 한·미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언급한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항장(項莊·초패왕 항우의 사촌)이 칼춤을 추는 의도는 패왕(沛王·한고조 유방)을 죽이려는 데 있다는 뜻)’은 굉장히 기분 나쁜 말이다.
‘왜 당신들이 칼춤을 추나’라는 얘기인데, 만약 우리가 이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중국에 주는 메시지, 바로 그것에 있다.”
대담=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리=강정숙 기자 shu@
정리=강정숙 기자 shu@
▲ 이동률 교수는
동덕여자대학교 중국학과 교수(55)는 중국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2011-2012년 한중전문가공동연구위원회 집행위원, 2012년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로는 중국의 대외관계, 중국 민족주의·소수민족 문제 등이며, 최근 연구로는 "중국의 해양영유권 분쟁에 대한 전략과 요인"(2015), “중국의 유엔 평화유지활동 참여 확대의 목적과 제약"(2014), "시진핑체제 외교정책의 변화와 지속성"(2012), “China’s Policy and Influence on the North Korea Nuclear Issue: Denuclearization and/or Stabil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2010), ≪중국의 영토분쟁≫ (편, 2008) 등이 있다.
“中, 북한 핵실험에도 ‘한반도 안정’에 방점… 한국의 ‘중국 역할론’ 재검토해야
사드 배치는 시진핑에도 외교적 실패… 한국도 의도않은 강대국 게임에 휘말려”
한·중관계, 新지도가 필요하다 ➌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