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우리가 사는 세계는 '감정'으로 해석된다. 한국인들은 감정을 통해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어떻게 공감하는지 궁금하다."
시각예술을 토대로 자연, 철학, 과학, 건축, 사회, 정치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예술의 새로운 개념과 형태를 보여 온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49)은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 '세상의 모든 가능성'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전시회 제목은 오늘날 우리가 문화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를 내포한다"며 "미술관은 미래를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내년 2월26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엘리아슨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의 대표 작품 22점을 선보인다.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해오며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엘리아슨은 미술관으로 대변되는 '인공적'인 공간에서 물, 바람, 이끼, 돌 등의 자연요소,그리고 기계로 만들어진 유사 자연 현상, 빛과 움직임, 거울을 이용한 착시효과, 다양한 시각 실험 등을 주로 활용하는 작가다.
우혜수 리움 학예연구실장은 "그의 작품은 비물질성, 일시성, 현재성 등의 특성을 추구한다"며 "철학적으로는 '현상학'적 관점이라 할 수 있는데, 예술은 예술가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람하는 관람객의 것이고, 더 나아가 예술가와 관람객의 상호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일 일깨워준다"고 평했다.
엘리아슨이 이번 전시에서 주목하는 것은 '무의식 상태의 감정'이다. 평소 개인적이면서도 매우 소소한 감정들에 주목한다는 그는 간담회에서 "감정은 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몸에 축적돼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며 "전시장에서 감정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전의 상태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전시장은 다원성, 경계 넘기, 불확실성, 모호함 등으로 점철된 작품들로 구성됐다. 북부 아이슬란드의 순록 이끼를 설치해 낯선 자연환경을 접하게 만드는 '이끼 벽'(1994)을 비롯해 중력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폭포를 통해 자연과 문명 간의 미묘한 대립을 드러내는 '뒤집힌 폭포'(1998), 거울같은 광택을 낸 마름모꼴의 스테인리스 스틸 판과 그것의 반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의 향연인 '자아가 사라지는 벽'(2015) 등은 관람객들을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한다.
또한 원의 중심에 동일한 크기의 원을 직각으로 놓고 올로이드(oloid)라는 기하학적 형태의 반짝이는 삼각형의 황동 판들을 중첩해 신비로운 빛을 반사하는 '사라지는 시간의 형상'(2016), 검은 바탕에 1000여 개의 유리구슬을 수놓아 성운(星雲)을 연상케 하는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2016)도 눈길을 끈다.
특히 지름 13미터에 달하는 원형 구조물에서 분사되는 물방울과 천장 조명기구의 빛으로 만들어지는 무지개가 압권인 '무지개 집합'(2016)은 관람객의 발길을 오래 붙잡을만한 작품이다. 전시장 한쪽에 비치된 우산을 쓰고 작품 안으로 들어가 무지개를 볼 수도 있다.
엘리아슨의 작품들은 저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만, 세상과 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의 감정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히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라는 제목은 예술작품은 세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작품과 더불어 어떤 세상을 만들지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일까. 엘리아슨은 자신의 예술철학을 이렇게 요약한다. "작품은 우리 내면에 있는, 그러나 아직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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