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모르고 죽었으면 좋았을 것들…'죽여주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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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0-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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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은 노인들 사이에서는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로 입소문을 얻으며 ‘박카스’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그러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진 단골에게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진짜 '죽여주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의 부탁이 이어지고, 소영은 더 깊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생활고와 사회적 외면에 등 떠밀려 박카스 할머니로 전락한 소영의 처절한 삶을 끈기 있게 바라보면서 노인 성매매를 야기한 사회에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이고 소영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고객들을 나열하면서 노인 자살의 가장 전형적인 3가지 유형인 ▷질병으로 인한 독립생활 붕괴로 무너진 자존심 ▷치매로 인한 자아 상실에 대한 공포 ▷사랑하는 사람의 사별로 인한 절대적 고독사를 정확하게 집어낸다.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장애를 가진 가난한 성인 피규어 작가, 성병 치료 차 들른 병원에서 만나 무작정 데려온 코피노 소년과 함께하는 소영의 일상은 ‘박카스 할머니’에게 현미경을 들이댄 이 영화를 소수자 문제 전체를 조망하는 망원경이 되게 한다.

영화는 소재를 무기로 해 관객의 눈물이나 분노를 뽑아내는 요량은 피우지 않는다. 소영은 물론이고 사회 음지로 내몰린 그의 주변 사람들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흥분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만족을 찾고 때때로 낄낄거리기까지 하는, 언제나 있어왔지만 아무도 들여다본 적 없는 그들의 일상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삶을 어둡지만은 않게, 위트를 가지고 따뜻하게 그리고 싶었다”는 이재용 감독의 목표는 꽤 성공한 듯 보인다. 상영관 안에서는 이따금 실소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개인의 불운이나 특정인의 범죄 때문이 아니라 아니라 사회 전체에 만연한 무관심이 만들어 낸 것들이라 갈 곳을 잃은 분노가 마음에 얹혀 오래도록 고통스럽다.

“모르고 죽었으면 좋았을 것들을 이 영화로 알게 됐다”는 윤여정은 이 영화로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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