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조건을 둘러싸고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파운드가 4일 달러 대비 31년래 최저로 떨어졌다.
파운드/달러는 4일 장중 한때 1.2719달러까지 미끄러졌다. 6월 23일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결정된 직후보다 더 떨어진 것이다. 파운드/유로 역시 1.136유로로 3년래 저점을 썼다.
지난 2일 영국 테리사 메리 총리가 내년 3월에 EU 탈퇴협상 개시를 알리는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할 것이며 EU시장 접근보다 이민 제한을 우선하겠다고 밝힌 이후 파운드는 두드러진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외환 전략가들은 영국과 EU가 브렉시트 조건 협상을 진행하면 파운드 변동성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로버트 우드 이코노미스트는 “메이 총리는 하드 브렉시트를 예고하는 것으로 영국이 이민 통제를 고집하면 EU와의 무역 협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이것이 지난 이틀간 파운드가 급락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4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환율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며 영국의 경제 펀더멘탈이 건전한다고 말해 뜻을 굽힐 의지가 없음을 시사했다. EU 지도자들은 영국이 지금처럼 EU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하려면 EU 시민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U 시장 접근이 제한되면 영국 금융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현재 영국에 있는 수천 개 금융기관들은 EU 각국에 자회사를 세우지 않아도 자유롭게 사업을 운영하고 거래할 수 있지만 이 권리가 제한되면 수익 악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들 금융기관과 연관 서비스는 매년 영국 GDP의 12%를 기여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또한 필립 해먼드 영국 재무장관은 3일 브렉시트 비용으로 영국의 부채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 2020년까지 세웠던 재정적자 균형이라는 목표를 철회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4일 영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IMF는 브렉시트 여파가 제한적이라고 해도 2017년 영국 성장률은 1.1%까지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영국 경제 지표는 예상을 상회하면서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많은 애널리스트들은 이것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브렉시트로 인한 경제적 여파에 대한 우려로 외국인 투자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파운드를 추가로 끌어내릴 수 있다.
UBS의 존 웨스 전략가는 “브렉시트의 즉각적인 충격에서 영국 경제가 점차 회복하고 있다는 지표가 발표되었지만 우리가 판단할 때 지표가 악화되기 시작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또한 며칠간 영국 증시는 파운드 하락 효과를 누리며 상승했지만 이 역시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벤치마크 지수인 FTSE100지수는 역대 최고치에 가까워졌고 스몰캡 위주의 FTSE250지수는 4일 사상 최고 종가를 썼다. 최근 경제지표 강세와 파운드 약세가 영국 수출업체들의 수익을 향상시켜 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파운드 약세는 대형 다국적 기업이나 수출업체들에 도움이 되지만 수입업체들은 비용이 늘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올해 파운드는 달러 대비 14%나 떨어지면서 주요 통화 중 낙폭이 가장 컸다. G10 통화 대부분은 올해 달러 대비 상승했다. 미국 대선에 크게 요동치는 멕시코 페소도 달러 대비 11% 하락했지만 파운드보다 낙폭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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