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미국의 위대한 음악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 왔다."
스웨덴 한림원은 13일(현지시간)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밥 딜런(75)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단 한 줄의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일각에선 딜런의 이번 수상을 '이변'으로 바라보지만, 그동안 수차례 후보로 거론됐던 만큼 그의 문학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 평화·인권·철학 담은 노랫말…오바마, "노벨 받을 만해"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사무총장은 이날 스톡홀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딜런의 1966년 앨범 '블론드 온 블본드'(Blonde On Blonde) 등을 예로 들며 "그의 음악은 가장 위대한 작품들의 샘플집과 같다. 음악계에 몸담아온 54년간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혁해 왔다"고 말했다. 노랫말의 혁신은 물론이고 새로운 사고방식과 운율의 조합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는 것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는 14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이나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등의 노래를 들으면 확실히 딜런이 일반 대중가수들과는 다른 노랫말을 쓰는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다"며 "예전 노랫말은 거의 사랑과 이별 얘기를 다뤘다면 그는 갑자기 평화, 인권, 반전 그리고 철학을 얘기했다. 그런 면에서 완전히 달랐다"고 평했다.
딜런의 노래 가사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워 종종 난해한 현대시에 비유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의 몇몇 대학에서는 그의 글을 분석하는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딜런의 수상이 발표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내가 사랑하는 시인들 중 하나인 밥 딜런에게 축하를 전한다"며 "딜런은 노벨을 받을 만하다"는 글을 올렸다.
올해 이미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던 미국은 문학상까지 거머쥐게 돼 축제 분위기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것은 1993년 토니 모리슨 이후 처음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뉴욕타임스는 "딜런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소설이나 시와는 다르지만 문학상 후보로 늘 거론돼 왔다"고 그의 수상을 반겼고, 공영라디오방송(NPR)은 "미국 음악의 타이탄이 노벨 문학상을 따냈다"고 환호했다.
이 밖에 영국 작가 조앤 베이크웰은 "딜런! 와! 훌륭한 선택"이라며 축하했으며, 미국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도 "그의 음악은 아주 깊은 의미에서 문학적이었다"고 칭찬했다.
인도 출신의 영국 소설가 살만 루시디는 "음악과 시는 매우 가까이 연결돼 있다"며 "딜런은 음유시인 전통의 뛰어난 후계자"라고 칭송했다.
◆ "트럼프에게 대통령 자리 주는 것과 같아"…대중성 치우친 결정 토로
그 반면 시인, 소설가 등 순수문학계에서는 딜런의 수상을 아니꼽게 바라보기도 한다. 미국의 소설가 조디 피코는 트위터를 통해 "딜런의 수상에 행복하다. 하지만 이번 수상은 내가 그래미상을 탈 수 있다는 의미지?"라고 말했고, 개리 슈타인가르트도 "(한림원의)결정은 이해한다. 어차피 책을 읽는 건 어려울 일일 테니까"라고 비꼬기도 했다.
역사학자 팀 스탠리는 텔레그레프에 '밥 딜런에게 노벨상을 주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미국 대통령 자리를 주는 것과 같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노벨상 위원회가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딜런에게 노벨 문학상을 줬다"며 날을 세웠다.
지난 10년간 문학상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도리스 레싱(영국·2007)과 앨리스 먼로(캐나다·2013) 등 독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작가들도 있었지만, 오르한 파묵(터키·2006),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2010년), 모옌(중국·2012), 파트리크 모디아노(프랑스·2014) 등 순수문학 안에서 대중성을 인정받은 작가들도 많았다.
밥 딜런의 수상은 노벨 문학상이 과연 순수문학을 위한 것인지, 문학성의 기준은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지향해 갈 것인지 등을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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