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럭키’(감독 이계벽)는 성공률 100%, 완벽한 카리스마의 킬러 형욱(유해진 분)이 목욕탕 열쇠 때문에 무명배우 재성(이준 분)과 신분이 바뀌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번 작품에서 유해진은 20년간 맡아왔던 모든 캐릭터를 집약, 형욱이라는 인물을 완성해냈다.
“‘럭키’의 경우, 전체적으로 상황에서 오는 코미디가 재밌었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살리고자 했죠. 안 그래도 영화 같은 이야기에 저까지 과장된 연기를 한다면 관객이 불편함을 느낄 것 같았거든요. 상황이 주는 웃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블랙코미디처럼 말장난보다는 상황에 집중했어요.”
유해진의 말대로였다. 영화 ‘럭키’는 그의 전작인 ‘타짜’나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는 다른 코미디를 추구하는 작품이다. 형욱은 ‘타짜’의 고광렬처럼 너스레를 떨거나, ‘해적’의 철봉처럼 요란스레 움직이는 법이 없다. 즉 화려하고 능수능란한 법 없이 묵묵하고 진지하게 상황들을 이끌어 간다.
코미디를 대하는 유해진의 태도를 가장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애드리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애드리브는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얼마나 진지하게 캐릭터와 작품에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제가 앞으로 등장하는 것, 뒤에서 등장하는 순서를 바꾸는 것도 일종의 애드리브에요. 어떤 아이템인 셈이죠. 그런 부분에서는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눠요. 책상에서 쓰던 시나리오가 현장에서는 많이 바뀔 수 있거든요. 여기는 개인기를 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웃는 건 관객이지 우리가 아니니까. 어떻게 하면 좋은 아이템이 나올까 연구해야 하는 거죠.”
대게 사람들은 유해진을 ‘애드리브의 대가’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의 애드리브는 철저한 고민과 계산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캐릭터와 완벽하게 일체하고, 상대 연기자를 배려한 끝에 어떤 답을 도출해내기 때문이다.
“전 원래 고민이 많아요. 사람들은 제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고 생각지만요. 물론 그렇게 보시는 게 당연해요. 저 역시도 그러기를 바라고요.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아, 정말 힘들었겠다’고 생각하면 안 되잖아요? 표가 나면 안 되죠. 애드리브도 마찬가지예요. 타고나서 순발력 있게 짠! 하고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연기도 일종의 약속이에요. 연기하는 도중에 아이디어가 떠오를 순 있겠지만 상대방이 놀라거나 저 때문에 연기를 못 하게 된다면 그건 약속을 어기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그는 애드리브를 윤활제라고 표현했다. 대개 많은 사람이 애드리브가 웃음에 기댄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애드리브는 윤활제”이며, “어떻게 하면 윤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찾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남을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게 더 어렵다고들 하잖아요? 하하하. 호흡이 진짜 다르거든요. 그래서 코미디가 더 어려워요. 적재적소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걸 어떻게 알고 들어가는지 계속 생각해야 해요.”
치열하고 뜨거웠던 현장. 이준을 비롯한 조윤희, 임지연 등 후배 연기자들의 열정은 훌륭했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돈독했다.
“정말 즐거웠던 건 후배들과 의견을 주고받을 때였어요. 특히 형욱이 기억을 되찾고 재성과 은주를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었어요. 배우들과 감독님이 어떤 지점을 찾아가기 위해 수많은 토론을 벌였거든요. 그런 과정이 즐거울 때가 있잖아요? 그 장면을 생각하면 참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숱한 고민과 의견을 나누며 즐거움을 느꼈던 건, 과거 연극을 하던 시절의 추억이기도 했다. 유해진은 형욱을 연기하며 자연스레 연극 하던 시절을 떠올렸고, 그것을 기반으로 무명배우인 형욱의 디테일을 완성해나갔다.
“연극을 했던 그 시절이 제게는 큰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운 좋게 바로 영화로 데뷔했다면 지금 같은 모습은 없었을 거예요. 연극을 하면서 사람을 이해하고, 인물을 이해하려고 했으니까요. 조금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번 ‘럭키’도 그렇잖아요? 저 역시도 형욱처럼 단역 배우이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고, 디테일을 살릴 수 있었잖아요. 지나고 나니 귀한 시간이었죠. 덕분에 이렇게 트레이닝을 할 수도 있었고요.”
하루아침에 킬러에서 무명배우가 된 남자. 만약 실제로 유해진에게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그에게 “하루아침에 신분이 바뀔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었다.
“글쎄요. 전 그냥 이준의 나이가 부러워요. 하하하. 고민도 많고, 막막하고, 일에 대한 불안도 있겠지만, 그 젊음이 부럽더라고요. 제가 나이를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어른들이 보면 웃으시겠죠?”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럭키’는 개봉 첫날 역대급 오프닝 스코어, 4일 만에 역대 코미디 최단기간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유해진은 “소소한 이야기가 반갑다”며, 관객들에게 이 소소한 이야기를 즐겨 달라고 부탁했다.
“예전에는 이런 소소한 영화를 많이 본 것 같은데 요즘은 많이 없더라고요. 오랜만에 가볍게, 모두 함께 볼만한 영화가 나왔으니 다들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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