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걷기왕' 힘들어 죽겠는데 왜 참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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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0-1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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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만복' 역을 맡은 배우 심은경[사진=영화 '걷기왕' 스틸컷]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열일곱 살 만복(심은경 분)은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버스는 물론 비행기, 배, 소, 말할 것 없이 모든 ‘탈 것’에 멀미를 느끼는 선천적 멀미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만복은 하는 수 없이 왕복 4시간 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니고, 담임선생님(김새벽 분)은 그의 ‘걷기 능력’을 비범이 여긴다.

그러던 어느 날, 만복에게 뜻밖의 ‘경보’가 울린다. 담임선생님의 제안으로 육상부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공부는 싫고, 운동은 쉬울 것 같아 덜컥 육상부에 가입했지만 꿈과 열정을 강요하는 담임선생님과 태평한 만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육상부 에이스 수지(박주희 분)로 인해 만복은 조금씩 ‘느린’ 자신을 다그치기 시작한다.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제작 ㈜인디스토리·공동제작 AND·제공 배급 CGV아트하우스)은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시리즈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백승화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백 감독은 선천적 멀미증후군을 앓는 소녀를 통해 무한 경쟁 사회를 조명, 조금은 느려도 괜찮다는 따듯한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영화는 독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리듬을 자랑한다. 애니메이션 ‘잘자, 좋은 꿈꿔!’를 연출한 바 있는 백승화 감독은 영화의 군데군데 일러스트와 효과음을 삽입해 마치 애니메이션 같은 효과를 준다. 이는 10대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짚어내면서도, 이야기가 무겁지 않고 사랑스럽게 풀어갈 수 있는 것에 일조한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속도감과 조화는 ‘걷기왕’만의 무기이자, 매력이다.

특히 꿈도 열정도 없는 소녀 만복을 비롯해 육상부 에이스 수지, 꿈과 열정을 강요하는 선생님과 9급 공무원을 꿈꾸는 소녀 지현(윤지원 분) 등 독특한 성격의 캐릭터들이 눈에 띈다. 캐릭터 강한 인물들이지만 애니메이션 같은 연출로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또 효과적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영화의 독특한 OST도 ‘걷기왕’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타이타닉’의 OST로 잘 알려진 ‘My heart will go on’을 리코더로 연주하거나, 인디밴드 무키무키만만수의 ‘안드로메다’ 등을 삽입해 백승화 감독의 음악적 위트를 돋보이게 한다. 이 같은 OST는 영화의 색깔과 질감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재료기도 하다.

러닝타임 92분 간, 영화를 관통하는 ‘사이다’ 대사들 역시 인상 깊다. “힘들어 죽겠는데 왜 참아야 돼요?”, “조금 느려도 되지 않을까?” 등 극 중 인물들의 대사는 꿈이 없어도, 적당히 해도 괜찮다는 위로 메시지 같다. 이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운 10대들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각박한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 느린 속도를 가진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는 자극 없이도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만복 역을 연기한 심은경의 연기도 돋보인다.​ 심은경은 ‘써니’의 나미와는 또 다른 ‘걷기왕’만의 소녀를 그려냈다. 한층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진 연기는 “‘걷기왕’을 통해 힐링 받았다”는 심은경의 말을 실감할 수 있게 만들며, 더욱이 발전된 그를 기대하게 한다.

박주희, 김새벽, 허정도, 윤지원, 안승균, 이재진, 안재홍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칭찬할 만하다. 유쾌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더욱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인물로 완성됐다. ‘걷기왕’은 10월 20일 개봉하며 12세이상관람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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