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박선미·류태웅 기자 = "갤럭시 노트7은 비록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삼성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혁신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홍채인식과 S펜 등 신기술은 경쟁사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보통신기술(ICT)업계 고위임원은 갤럭시 노트7에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면서 "지금이야말로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전자 최고경영진들이 기술진들의 혁신 의지를 더 북돋워줘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스마트폰은 통신·반도체·디스플레이·컴퓨터·카메라·동영상·소프트웨어 등 첨단 ICT 기술을 손바닥 크기의 기기에 집약시키는 융합 제품이다. 여기에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결합시키면서 유행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창조해야 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기업이 시장에서 요구하는 성능과는 전혀 다른 차별화된 요소로 새로운 고객의 기대에 대응하면서 신시장이나 틈새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와해성 혁신자(Disruptive Innovator)’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존 기술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존속성 혁신(Sustaining Innovation)’만으로는 선도자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 애플의 아이폰에게서 혁신이 사라지자 소비자들 사이에선 스마트폰에 대해 ‘어떤 제품을 써도 성능은 그저 그렇다’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처럼 메이커별 차별성·정체성이 희석되고 있는 순간 갤럭시 노트7이 나왔다. 홍채인식과 S펜, 듀얼 엣지 디스플레이, 원격진료 등 갤럭시 노트7에 적용된 첨단 기술들은 스마트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다른 IT기업 관계자는 “갤럭시 노트7은 스마트폰 생활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부활시켰다고 소비자들은 강렬히 반응했다"며 "삼성전자는 ‘와해성 혁신자’로 부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내비쳤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선 삼성전자를 두고 해외 경쟁사들에 비해 창의력과 혁신 노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삼성전자만큼 혁신을 이뤄낸 기업은 흔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신경영 전도사’로 불리는 고인수 전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은 “기업은 왜 강한가? 망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기업의 평균 수명은 30년 밖에 안 되며, 때문에 망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그래서 강해진다는 얘기다. 고 부원장은 “망하기 때문에 기업은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노력을 한다"며 "삼성전자는 그렇게 해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대표 사업은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휴대전화다. IT·전자 산업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로 꼽는다. 이들 사업은 상당한 ‘도전정신’이 없다면 해낼 수 없는 사업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낸 이윤우 광주과학기술원 이사장이 “보통의 도전정신이 아니라, 바위로 계란치기 수준의 도전정신이 아니면 이뤄낼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이들 3개 사업은 그룹 운명을 걸 정도의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며, 투자를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리스크적’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주도할 수 있는 능력과 이를 실현할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경쟁사들을 제치고 시장 표준에 오르기 위한 시장 분석력도 필요하다. 한 순간만 놓치면 일시에 회사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발을 담근 직후부터 빼낼 때까지 ‘상시적인 위기의식’에서 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의 ‘선택과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경쟁사와의 경쟁보다 더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 때문에 '스트레스 사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런 부담과 역경을 이겨내고 3개 사업은 물론 가전까지 세계 1위 반열에 올려놓았다.
특히 갤럭시 노트7은 이러한 ‘개척자’로서 삼성전자의 성공 DNA가 집약된 제품이었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은 지난 8월 갤럭시 노트7를 처음 공개한 자리에서 “우리 제품이 의미 있는 혁신을 했는지, 시장에 나갔을 때 소비자들에게 잘 받아들여질지가 가장 중요했다”고 밝혔다. 혁신을 뛰어넘는 혁신을 위해 고 사장과 삼성전자 개발진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일부에서는 혁신 조급증이라고 지적하지만, 오히려 그동안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혁신을 했기 때문에 이를 주저한 경쟁사들은 모르는 좌절을 맛보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 갤럭시 노트7에 담긴 삼성전자의 혁신의 결실과 실패의 경험은 후속작을 개발하는 데 있어 큰 자산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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