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혜란 기자 = 촛불이 다시 타올랐습니다.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에 시민 최대 3만여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1만2000명)이 모였습니다.
촛불이 타오르자 30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촛불집회 이후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각각 긴급 회의를 연다고 합니다.
이날 촛불집회 현장에서 시민은 '이게 나라냐' '박근혜 퇴진', '피로 이룬 민주주의를 더럽히지 말라' 등의 손팻말을 들었고, "쪽팔려서 못 살겠다.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권력 사유화 논란의 중심에 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민심의 명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집회에선 "국회의원이 할 일을 안 하고 있다. 정치권이 할 일은 박근혜를 탄핵하는 일", "여야 정치인들 믿지 말고 우리 손으로 하야시킵시다"라는 시민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렸습니다. 청계광장 주변엔 '야당 지금이 쫄 때냐. 야당 말고 국민 손으로 하야!'라는 벽보도 붙었습니다. 최순실 게이트 의혹으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는 비상 상황에서 민심의 국정 쇄신 요구에도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을 향한 분노가 담겼습니다.
박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들끓는 민심에도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대통령의 탄핵이나 하야와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이날 촛불집회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민주당 송영길·박주민·정재호 의원 등 10여 명만이 개별적으로 집회에 함께 했습니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실제로 퇴진하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아 60일 이내에 다음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정치적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합니다. 대신 야권은 거국중립내각을 국정 수습책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선 주자인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김부겸 민주당 의원 등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탄핵이나 하야를 요구하는 성난 민심을 담으면서도 우리의 대응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게 거국중립내각 구성"이라면서 "대통령이 하야할 경우 정치적 혼란이 너무 큰데 이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거국내각 구성은 여전히 추상적 논의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여야가 대선 득실을 따지느라 국정 수습은 뒷전이라는 비판도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새누리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에게 '셀프 특검' 기회를 주는 상설특검을 고수하고 있고, 당내 비박근혜계가 제기하는 지도부 사퇴론을 애써 무시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정치 불신을 자초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가운데 정의당은 당론으로 '하야'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은 촛불집회가 시작하기 전 오후 5시께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시국연설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김종대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우리도 (하야를 전면에 내세울지) 고민이 많았다"면서도 "하야가 정치적 구호이긴 하지만 이렇게 압박해야 기득권을 내려놓고 제대로된 특검부터 중립내각까지 갈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의당 한 관계자도 "(하야나 탄핵이) 현실성이 없다고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을 대변하진 않는 건 책임 방기"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하야하면 정치적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알지만 국민과 함께 정치권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더 크게 반영된 것입니다.
국민은 이미 박근혜 정부에 사실상의 파산 선고를 내렸습니다. 이제 이러한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이 정국을 어떻게 수습하고 대한민국호의 항로를 바로잡을지 해법을 내놓는 것은 정치권의 몫입니다. 국민의 분노와 좌절감, 상실감을 치유하고 정치가 다시 서기 위해 국회는 어떤 대책을 내놓을까요. 국민은 29일 촛불집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보여줬습니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지난 29일 "이럴 때일수록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국민이 상실감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행동 목표를 제시하고 동력을 조직화해야 한다"며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위한 1000만 국민 서명 운동을 시작할 시점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민 의원의 주장은 대통령이 2선 후퇴하고 여야 협의로 세운 총리가 거국내각을 구성하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국민의 행동 목표'로 국민 서명 운동을 제시한 셈입니다.
크게 동요하는 민심에 정치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시민의 동력을 조직화해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권의 다음 '스텝'에 국민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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