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우려하는 것은 이번 사태로 선장이 힘이 빠진 ‘한국경제’호가 바다가 아닌 산으로 향하는 공멸을 자초하는 게 아니냐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1년 5개월 정도 남은 상황에서 터진 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박 대통령의 하야 및 정권의 조기 교체 요구가 거세지면서, 위기상황인 경제회복이 또 다시 국정 정책의 후순위로 밀려난 상태다.
관건은 최 씨가 검찰조사 과정에서 얼마나 진실을 말할 것이냐는 것이다. 그의 발언 수위에 따라 사태는 진정이 아닌 새로운 국면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사례처럼 당사자들이 재벌에 불리한 발언을 이어간다면 가뜩이나 재벌의 발목을 잡고 있는 반기업 정서가 득세해 국회에서 논의 중인 경제활성화 법안 통과는 물 건너갈 뿐만 아니라 법인세 인상 등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이 대거 입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할 소통창구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문제로 인해 검찰의 압수수색은 물론 이승철 상근 부회장 등 임직원들이 소환조사를 당하며 힘을 완전히 잃었고, 대한상공회의소 등 다른 경제단체들도 섣불리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석까지 몰렸다.
이날 최 씨의 귀국 소식에 전경련측은 “우리가 얘기할 거리가 아니다. 할 말이 없다”고만 밝히고 서둘러 통화를 끊었다.
전경련은 최 씨가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미르재단에 486억원, K스포츠재단 269억원 등 30개 기업이 내놓은 두 재단의 설립 출연금 모금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재단 모금액은 755억원에 달한다. 전경련은 기금 모금이 회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였다고 강조했고, 청와대도 이와 같은 발언을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 이어 재계 일부 기업들은 최 씨 등을 등에 업은 측근들의 강요가 있었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 등 사정기관의 조사도 진행됐다고 폭로하며, 모금의 정당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26일 미르·K스포츠재단과 함께 전경련은 동시 압수수색한 데 이어 이어 28일에는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16시간이 넘는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재단 출연금 조성 경위와 청와대 개입 여부를 추궁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가 불거지자 전경련은 서둘러 두 재단을 해체하고 새로운 재단 설립, 조직 쇄신안 등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향후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재계의 이익단체라는 목적과 달리 정부의 대재벌 견제를 위한 소통창구로 전락한 전경련에 대해 정치권과 사회단체들은 전경련 해체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동안 전경련의 행동에 불만을 가져왔던 일부 회원사들도 이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 씨 수사 결과에 따라 ‘전경련 해체’가 가시화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의 해체로 정경유착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퇴직한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은 기업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의 의견을 기업에 전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정부와 재계간 관계를 적절한 균형으로 맞추는 게 그들의 목적이다”라면서 “전경련이 해체된다면 정부-재계 관계 설정을 혼잡스럽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양쪽 모두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 “조속한 수사하고, 경제회복에 올인해야”
전경련의 위축은 재계의 대정부와의 대화능력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하고 있다.
A그룹 관계자는 “우리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지금은 ‘억울하다’는 표현은 물론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면서 “향후 있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진실이 명확하게 밝혀져 기업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진실이 밝혀지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B그룹 관계자는 “3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서도 보았듯이 주력 기업들의 실적이 급락하면서 국가의 수출과 경제성장률도 동반 하락하는 등 경제위기는 현실이 되고 있다”면서 “이런 가운데 경제를 콘트롤 해줘야 할 정부의 힘이 빠져 걱정이다”라면서 “중국과 일본이 최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경제를 이끌고 있고, 미국도 4차 산업혁명 등을 주도하며 뛰고 있는데 우리는 또 다시 정치사태에 기업이 발목을 잡혔다. 뛰고 싶어도 뛸 수가 없다”고 우려했다.
재계는 최 씨의 검찰 조사가 본격화 될 경우 기금 모금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절차와 방법이 아무리 정당했다고 항변하려고 해도 결국 모금에 참여했다는 ‘원죄’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정권의 ‘공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 수사 결과 재벌의 책임론이 불거지면 사정 한파가 재계에까지 불어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C그룹 고위 관계자도 “수사가 어떤 방향으로 결정나던 간에 빠르고 공정하게 이뤄져 관련자는 처벌을 받고 보다 근본적인 현안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사태의 책임을 기업들에게 덮어씌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정부부처가 경제회복을 위해 뛰어줘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도 힘을 얻는다”면서 “국회도 과도한 기업 옥죄기 입법안만 내세우지 말고 경제회복을 위한 대승적 판단을 내려주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