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55)이 사표를 제출한 데 이어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58)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정농단의 본거지'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문체부가 '최(순실)-차(은택) 라인' 정리에 들어가며 최근 제기되고 있는 각종 의혹에서 한 걸음 물러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 차관은 지난달 30일 언론을 통해 "현재 상황에서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문체부 직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기 때문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인사청탁과 더불어 정부의 각종 사업을 최순실(60)·차은택(47) 씨 측근에게 넘겨준 의혹을 받고 있는 김 차관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 이튿날 오전엔 송 전 원장이 자신이 관련된 의혹들로 업무 수행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문체부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같은 날 오후 즉각 수리됐다.
◆ '투명한 시스템 구축' 쇄신안 내놓은 문체부…"알맹이없는 면피용 대책"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주말(30일)에 소집한 긴급간부회의와 오늘 오전 개최한 간부회의를 통해 문체부의 현 상황을 점검하고, 앞으로 추진해야할 방향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며 "외부개입으로 추진돼 논란이 되는 사업들에 대해서는 법령위반, 사익 도모 여부 등을 엄정히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사업들에 대해서는 과감한 정리를 포함해 모든 법적·행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김 차관과 송 전 원장을 비롯해 그동안 최순실·차은택 인맥으로 꼽혀온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59),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56) 등이 문화·체육 분야에 남긴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검찰이 지난달 27일 세종시 문체부 콘텐츠정책관 사무실과 29일 김 차관의 사무실·자택을 압수수색한 것도 문체부의 숨통을 조였다는 후문이다.
문체부는 이날 △각종 지원금, 계약, 인선 등의 시스템 구비 여부 점검 △공정성·투명성 확보할 수 있는 업무체계 구축·보완 △정책추진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담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의 '쇄신안'을 내놓은 데 이어 1일 정관주 문체부 제1차관(52)을 팀장으로 하는 '문제사업 재점검·검증 특별전담팀'을 구성했다고 밝혔지만, 알맹이없는 '면피용 대책'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콘텐츠진흥원의 한 전직 간부는 "문체부가 진흥원장 선발 방식을 좀 더 공정하게 하겠다며 새로운 공모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틀'에 집착하는 꼴이다"며 "여태까지의 부정과 전횡이 과연 제도가 미비해서 그런 것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문화융성'으로 대변되는 정부의 문화 정책들은 대부분 부처 내에서 기획돼 탄생한 것"이라며 "최씨와 차씨의 손길이 닿은 일부 사업들은 환부를 도려내면서 앞으로 구체적인 대안들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비전문가들의 '어림짐작' 사업 횡행…문화창조융합벨트 축소 불가피
"비전문가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며 생색내기 좋은 곳".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은 문체부와 문체부 산하의 주요 공공기관들을 이같이 일컬었다. '한류' '한식' '크리에이티브' 등의 수식어가 붙는 문체부의 사업들은 딱 떨어지는 무언가가 없고, 예산을 써도 그 결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다른 부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 7월 유진룡 전 장관이 후임자도 없이 경질된 후 문체부에는 문화·예술행정 분야 '비전문가'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유 전 장관이 물러난 바로 다음 달 차씨의 홍익대 대학원 은사인 김종덕 교수가 장관 자리를 차지했고, 지난 2월엔 변호사 출신인 정관주 제1차관이 들어왔다. 이들보다 앞서 2013년 10월 취임한 김종 제2차관도 한양대 교수 출신으로 '비관료'인 것은 마찬가지다.
김 전 장관과 김 전 차관의 발탁에 대해 당시 문체부 직원들은 "장·차관 자리 중 최소 한 곳은 내부 승진자들로 채우는데, 갑작스러운 김희범 차관 사임·박민권 차관 경질 이후 이들 자리가 모두 외부인사들에게 돌아갔다"며 의아해했다.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과 더불어 불거진 '늘품체조' 논란은 문체부의 전문성 부족을 단적으로 드러낸 예다. 헬스 트레이너 정아름 씨가 "안무가, 이름, 콘셉트 등을 모두 차은택 씨가 정해줬다"고 폭로한 늘품체조는 2014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 체조의 어색한 명칭, 부상 위험성 등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한국스포츠개발원이 2억원을 들여 '코리아체조'를 개발중이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결국 코리아체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늘품체조 개발에 3억5000만원이 들었다고 하니 총 5억5000만원의 국고가 엉성한 '안무 짜기'에 쓰인 셈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어림짐작으로 진행된 사업과 인사를 원점에서 재점검할 생각"이라며 "특히 차씨가 앞장선 것으로 알려진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면밀히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창조융합벨트는 융·복합 콘텐츠를 기획-제작-사업화-소비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올해 예산 904억원, 내년도 예산 1278억원 등 2019년까지 모두 7176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차씨는 지난해 4월 이를 총괄하는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에 임명됐다.
야당 의원들은 지난해 이 사업의 투명성 부족 등을 이유로 국회 예산심의과정에서 감액 의견을 내놓았지만, 관련 예산 대부분이 그대로 통과됐다.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 의원들은 최근 문화창조융합벨트 내년 예산을 '전액 삭감'과 '대폭 감액'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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