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화에 꽃이 피다…조선 선비들이 사랑한 '시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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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1-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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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오는 20일까지 '선비의 예술, 시전지'전 개최

  • 한국·중국 시전지, 화보류 200여점 선보여

청나라 말기 시전지                                                                                                       [사진=고판화박물관 제공]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요즘이야 손편지를 잘 안 쓰지만,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데는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종이만한 것이 없다. 하물며 꽃, 나무, 새 등이 아릅답게 그려진 편지지라면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관장 한선학)은 오는 20일까지 특별전 '선비의 예술, 시전지(詩箋紙)'를 개최한다. 강원문화재단(이사장 김성환)의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조선중기에 제작된 연꽃무늬 시전지 목판을 비롯해 수선화·매화·대나무가 새겨진 시전지 목판 등 한국과 중국의 작품 200여점을 선보인다.

시전지는 시를 쓰기 위해 무늬를 넣어 특별 제작한 종이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편지를 쓸 때 가장 많이 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종 그림이 새겨진 목판화가 주류를 이루는데, 그 중 꽃 무늬가 가장 많아 '화전지'(花箋紙)라고도 불린다.


 

개자원화보(산수보)                                                                                                        [사진=고판화박물관 제공]



고판화박물관은 지난 20여년간 한국·중국의 시전지 목판, 다색 목판화, 각양각색의 화보류 등 시전지 관련 유물을 집요하게 수집해왔다.

그 중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이 소개되는 작품들은 조선시대 선비·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명·청시대 화보류로, 십죽재화보·고씨화보·당시화보·시여화보·팔종화보·방씨묵보·정씨묵원·개자원화보·만소당죽장화전 등 고판화박물관의 소장품들이 망라된다. 화보류와 전지류는 그 자체로 희귀한 품목인 데다 이들을 대규모로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라, 미술사·서지학·디자인 부문 연구자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화보류 외에도 감탄을 자아낼 만한 그림들이 아로새겨진 목판과 시전지, 옛 편지글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편지와 편지 봉투들도 전시된다. 


 

죽책 문양 시전지 목판                                                                                                    [사진=고판화박물관 제공]



예로부터 시전지에는 선비들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는 의미로 사군자(매화·난초·국화·대나무) 무늬가 많이 들어갔다. 그렇지만 이에 못지않게 연꽃, 새, 병에 담긴 꽃 등도 자주 등장했고, 그림과 함께 길상(吉祥)이나 다양한 뜻을 담은 글귀를 담기도 했다.

시전지도 유행을 탔다. 17세기 중반까지는 글씨 쓰기가 쉬운 죽책(竹冊) 형태의 세로줄이 대세를 이뤘지만, 이후엔 줄 없이 한쪽에 작은 문양·문구를 넣은 것이 인기를 끌었다. 중국을 왕래하던 선비들은 북경 '유리창'(流璃廠·서점과 골동품점, 문구점 등이 많은 거리)에서 다양한 다색 목판화 시전지를 경쟁적으로 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청나라 화상(華商)들이 시전지를 본격적으로 수입해 오던 18세기부터는 종이 크기가 작아지면서 규격화됐고, 색상과 문양은 더 화려해졌다.

 

청나라 후기 시전지                                                                                                       [사진=고판화박물관 제공]



한선학 관장은 "문양이 아름답게 새겨진 시전지는 편지에 담긴 내용과 어우러져 글쓴이의 마음을 한층 멋스럽고 품위 있게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며 "현대에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양을 연구하는 중요한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 기간 토·일요일에는 관람객들이 직접 새긴 시전지 목판으로 편지를 써 보내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전시 관련 자세한 사항은 고판화박물관 누리집(www.gopanhw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33-761-7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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