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최순실發 국정 농단의 불똥이 재계로 튀면서, 유통 대기업들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가장 큰 출연금을 낸 롯데그룹의 사정이 제일 딱하다. 롯데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롯데가 28억원, 롯데케미칼이 17억원을 두 재단에 기부했다. 또한 롯데그룹은 후원금 추가 요구를 버티다 결국 70억원을 냈고, 이후 검찰 수사 전 전액을 되돌려 받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문화 기업을 강조하는 CJ그룹은 미르재단에 8억원, K스포츠재단에 5억원, 총 13억원을 출연했다. CJ는 또한 최순실의 최측근 차은택씨가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K-컬처밸리 특혜 의혹에 휘말려 연일 곤욕을 겪고 있다.
신세계그룹도 신세계가 1억5000만원, 이마트가 3억5000만원을 각각 기부금 명목으로 내 최순실 게이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 대기업 관계자들은 ‘최순실 게이트’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알고 보면 우리도 피해자”라고 입을 모은다. 대통령을 앞세운 비선 실세에게 재벌들이 속된 말로 ‘삥 뜯긴’ 꼴이 됐으니, 그 창피함이 오죽 할까 하는 동정심은 든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과연 대기업들이 최순실 게이트의 또 다른 ‘피해자’라고 보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너무나 많다. 실제로 출연금을 낸 대기업들은 일련의 특혜 의혹에 대해 앞 다퉈 “최순실 게이트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선 긋기에 바쁘다. 뒤가 단단히 구린 모양새다.
오죽하면 조만간 시내면세점 입찰을 앞둔 5개 대기업 중 모(母) 그룹 차원에서 유일하게 출연금을 내지 않았다는 한 기업만이 승리를 자신하겠는가. 그만큼 최순실 게이트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기업들은 각종 정부사업의 특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씁쓸한 반증이다.
최근 SNS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대국민 담화 패러디가 봇물 치고 있다. 내막이 어떻든 굴지의 대기업들이 ‘강남 아줌마’ 한명의 배를 불리는데 수십억을 낸 꼴이니 “이러려고 재벌 했나”라는 한탄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최순실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운 것처럼, 기업들도 자사의 이익을 위해 불법을 외면한 채 정부에 사실상 거금을 상납했다는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면, 국민들의 분노를 피할 수 없다. 실제 지난 5일 광화문 집회 인파 20만명의 비난 목소리는 비단 박근혜·최순실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집회 곳곳에선 “재벌 해체” 요구가 제법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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