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예정돼 있는 사장단·임원인사와 내년도 사업계획 등 기본적인 경영활동조차 적잖은 차질이 우려된다. “우리도 피해자다” “어려운 경제의 목을 더 이상 죄어선 안 된다”는 희미한 목소리만 겨우 새어나온다.
이런 가운데 재계는 최순실 게이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와는 선긋기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8일 검찰과 재계 등에 따르면 ‘비선 실세’ 최 씨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 소속 수사관들은 이날 오전 6시40분께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을 압수수색 했다.
특히 검찰은 부부장 검사 1명과 검사 2명 등 3명의 전담 조사팀을 꾸려 기금을 출연한 모든 기업을 조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기업들의 출연금 의혹은 케이스마다 상황이 다르다. 기금을 출연하게 된 배경을 전수조사를 통해 알아봐야 된다”며 “기업들이 사실에 부합하게 얘기를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총수를 불러 조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모두 53개사에 달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미르재단 설립에 앞서 7명의 재계 총수들을 따로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에 대한 수사 역시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같은 검찰의 수사 방침이 알려지면서 재계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0대 그룹 관계자는 “공정한 수사가 이뤄져 오해가 풀리길 바란다”면서도 “국민 정서가 너무 안 좋아져 부담이 크다”고 전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속된 말로 청와대 압력에 삥을 뜯겼는데 마치 대가를 바라고 협조한 피의자로 몰리니깐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검찰 수사가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재계는 이달부터 시작하려던 사장단·임원인사와 내년도 사업계획 확정 등 최소한의 경영활동에도 적잖은 차질을 빚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 씨 게이트에 연루된 그룹 중 일부는 수사가 끝날 때까지 인사를 늦추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전경련이 사태 해결을 위한 회장단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나 해당 기업들의 반응은 싸늘한 상태다.
전경련은 오는 10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비공개로 회장단 회의를 개최하기로 하고 현재 회장단 총수들의 참석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그동안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려왔으며, 2년 전부터 개최 안건 등을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다.
전경련은 이번 회의 개최 여부 조차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복수의 대기업 관계자들은 “전경련으로부터 회장단 회의 참석 요청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경련이 마련한 ‘환골탈태’ 수준의 개혁안과 후임 회장 선임 등 굵직한 사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을 비롯해 10대 그룹 총수들의 상당수가 불참할 분위기여서 회의가 예정대로 개최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10대 그룹의 고위임원은 “총수들이 전경련과 선을 그으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승철 상근부회장 등 전경련 임원들이 최 씨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고 전경련 회관이 압수수색까지 당한 상황에서 굳이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있겠냐는 얘기다.
그는 이어 “(전경련에 대한) 총수들의 마음이 떠난 상태”라며 “내년 2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허창수 현 회장도 더 이상 회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덧붙였다.
전경련은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정경 유착의 통로’, ‘정권의 모금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해체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회원사들은 전경련이 재계 보다는 청와대의 목소리만 대변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현재의 위기 극복을 위해 총수들의 중지를 모아야 할 ‘콘트롤 타워’는 실종됐다”면서 “특히 재계를 이끌어갈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없어 재계의 표류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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