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53> 북촌에서 행운의 백송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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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1-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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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조득균 기자 = 돌풍이 불던 밤이 지나가고 날이 밝은 1990년 7월 17일.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 남서쪽 통의동에 서 있던 백송 한 그루가 쓰러진 것이다.

이 통의동 백송이 쓰러진 것을 뉴스에서 본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백송을 살려내라고 엄명을 내린다. 영양제주사 등 갖가지 노력이 쏟아지지만 백송은 결국 생을 마감했다. 도대체 이 나무가 뭐길래 대통령까지 나서게 된 것일까?

백송의 흰 색깔이 개인과 집안, 나아가서 국가의 영화(榮華)에 따라 더욱 희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통의동 백송이 쓰러지고 나서 '가장 오래된 백송'이라는 영예를 이어받은 것은 재동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백송. 이 백송은 3호선 안국역에 인접한 재판소 본관 뒤쪽에 서 있는데, 키가 14m에 이른다.

이 자리는 영조 때 유명한 재상이었던 조상경의 집이었다. 조상경은 7번이나 판서를 하면서 조선조 후기 풍양 조씨들의 세도정치를 이곳에서 펼쳤다. 1819년에는 조민영의 어린 딸이 세자빈으로 간택돼 창덕궁으로 들어가는데, 나중에 고종이 즉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서울의 대표 관광지인 인사동은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자주 닿는 곳이다. 천연기념물 제8호로 지정된 재동 백송이 있는 헌법재판소의 길목을 거쳐 지날 수 있다. 여유가 있다면 이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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