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통의동 백송이 쓰러진 것을 뉴스에서 본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백송을 살려내라고 엄명을 내린다. 영양제주사 등 갖가지 노력이 쏟아지지만 백송은 결국 생을 마감했다. 도대체 이 나무가 뭐길래 대통령까지 나서게 된 것일까?
백송의 흰 색깔이 개인과 집안, 나아가서 국가의 영화(榮華)에 따라 더욱 희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통의동 백송이 쓰러지고 나서 '가장 오래된 백송'이라는 영예를 이어받은 것은 재동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백송. 이 백송은 3호선 안국역에 인접한 재판소 본관 뒤쪽에 서 있는데, 키가 14m에 이른다.
이 자리는 영조 때 유명한 재상이었던 조상경의 집이었다. 조상경은 7번이나 판서를 하면서 조선조 후기 풍양 조씨들의 세도정치를 이곳에서 펼쳤다. 1819년에는 조민영의 어린 딸이 세자빈으로 간택돼 창덕궁으로 들어가는데, 나중에 고종이 즉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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