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라디오 시대②] 라디오 부스에서, '여성시대' 박정욱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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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1-1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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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박정욱 PD[사진=MBC 제공]


[편집자주] 즐기고 볼 것들이 넘쳐나는 지금, 라디오의 위기를 논하는 것은 이미 너무 새삼스러운 일입니다. 영국 밴드 더 버글스가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고 외친 것이 이미 1980년이니까요. 하지만 끊임없는 위기론에도 라디오는 끊기는 법이 없었습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미디어를 통해 당신과 거리를 좁히고 보이는 라디오, 팟캐스트와 같은 주문형 방송으로 다각적 접근을 이끌어 내면서 라디오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라디오 시대!"라고 외치는 이유입니다. 뒤숭숭한 시국에 절망했나요? 고단한 삶에 지쳤나요?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노래가 그대를 향해 울리"니까요(신승훈의 노래 '라디오를 켜 봐요').

아주경제 정진영 기자 = "라디오 PD가 방송 중에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아요. 디렉팅은 글로 하거든요. 그런데 2시간 방송을 마치고 나면 엄청 수다 떤 느낌이에요."

MBC 표준FM의 대표 효자 프로그램 '여성시대'의 연출을 맡은 박정욱 PD는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기분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럿이 모여서 수다를 떤 느낌'이라고. "늘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에 수다가 기다리고 있는 거지.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수다를 떨고 그러면서 속에 쌓였던 것도 푸는 것 아니겠나. 오늘의 수다가 기록으로 안 남아서 아쉽다고? 그렇다면 내일 다시 내일의 수다를 떨면 된다."

박정욱 PD가 '여성시대'를 맡은 건 수 개월 전이다. MBC 라디오국의 PD들은 대개 1년 내외를 주기로 프로그램을 바꾸는데 그러면서 완전히 결이 다른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게 되기도 한다.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그 안에서도 예능, 아침, 시사, 음악 등 여러 장르로 나뉜다.

그런 측면에서 '여성시대'는 결코 쉬운 프로그램이 아니다. 40주년을 앞둔 뿌리 깊은 프로그램인데다 DJ 양희은은 벌써 이 프로그램을 20년 가까이 맡아 진행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MBC 라디오국의 간판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보니 좋은 기운을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을 리 없다.

"제 일은 그냥 두 분(DJ 양희은, 서경석)이 잘하게끔 서포트 하는 것이라 봐요. 어느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진데 라디오 PD는 뭔가를 많이 주도해서 이끌어 간다기보다는 DJ가 잘할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양희은 선생님과 서경석 씨는 상호보완적인 부분이 많은 커플이라 제가 강하게 개입할 뭔가가 있지는 않아요. 두 분이 가진 것들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여성시대'는 20대도 사연을 보내고 70대도 사연을 보내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때문에 가끔 노래 선곡 등으로 고민하게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덕에 더 즐겁게 방송을 할 수 있다. 박 PD의 표현에 따르자면 청취자들의 사연 안에는 '삶의 속살'이 있는데, 그는 "큰 담론이 얘기되는 게 정치라면 '여성시대'는 그런 담론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곳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여성시대' 안에는 부모를 요양원에서 모셔야 하는 아픔, 어떻게든 취직하려고 애쓰는 취업 준비생들, '갑질' 횡포에 시달리는 아르바이트생들, 소소한 부부 간의 이야기, 자녀와 만든 에피소드 등이 모두 담겨 있다.

"방송에 안 나간 사연들도 많죠. 그런 사연들도 차마 버리지 못 하고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요. 제가 더 젊었을 때 했던 고민들,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이 담긴 사연들을 보게 될 때도 있는데 그런 글을 읽으면 '얼마나 이 사람이 막막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 사연들은 하나하나 다 소개하고 싶죠. 하지만 방송 시간의 제약도 있고, 또 프로그램이 너무 무거워지기만 하면 안 되니까 그 밸런스를 맞추려 고민을 많이 해요."

'X세대'라 불렸던 박정욱 PD는 중·고등학생 때는 할머니가 늘 틀어놓던 라디오를 들었고 대학생 때는 '시선집중'을 들었다. 뮤직비디오에 익숙한 '비디오 세대'가 라디오에 느끼는 매력은 또 다른 차원의 그것이다. 팝 대신 가요를 들었고, 가끔씩 공테이프에다 이문세, 변진섭의 노래들을 녹음하기도 했다. 라디오의 캠페인이 사회를 바꾸는 시절을 살지는 않았지만 생애주기에 따라 다른 프로그램을 들어 가면서 지냈다.

"결혼을 하면 그 전과 다른 경지의 삶을 살게 되고, 자식을 낳으면 또 달라져요.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에 진출하고, 부모님이 늙어가고…. 그런 일들을 겪으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거든요. '여성시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프로그램이에요. 톡톡 튀는 20대 감수성이 늘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변하더라고요. 마음 한 구석에 약간의 무거움을 가지고 있는 그런 어른의 삶을 '여성시대'는 말하고, 또 그런 마음을 말하고 싶은 청취자들을 위해 여기 계속 머물러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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