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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예상치 못한 카드였다. 촛불정국이 최고조에 달한 14일 전격 결정된 박근혜 대통령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성사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통상적으로 영수회담은 정국주도권을 실기한 쪽에서 국면전환용으로 꺼낸다. 일종의 ‘판 흔들기’ 카드인 셈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열리는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와의 단독 영수회담은 사상 초유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인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정국 주도권을 쥔 제1야당이 전격 던졌다. 추 대표는 우상호 원내대표 등 일부 지도부하고만 상의했을 뿐, 의원총회의에서 당 총의를 모으지도 않았다.
그간 영수회담 과정에서는 대통령과 야당이 시기 및 장소 등을 놓고 몇 차례 핑퐁게임을 벌였으나, 이번에는 추 대표가 ‘상관없다’는 뜻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추 대표가 이날 오전 6시 30분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단독 영수회담을 제안한 지 4시간 만인 오전 10시 30분께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단독 영수회담은 온갖 의혹을 남긴 채 15일 열리게 됐다.
◆秋, 하야·질서 있는 퇴진 등 요구할 듯
한국 정치에서 영수회담 제안은 담판을 고리로 한 ‘정국 돌파용’ 카드다.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탄핵’ 주장이 나오는 최악의 국면에서 박 대통령이 야권의 제안을 전격 수용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국 반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게이트 정국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는 얘기다.
추 대표의 전격적인 결단은 당의 창조적 파괴 방안을 놓고 극한 계파 갈등을 일삼는 새누리당이 더는 정국의 카운트파트너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청와대와 국정 공백 방안을 논의, 제1야당으로서 수권능력을 보여주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최대 의제는 ‘박 대통령 권력이양’ 방안이다. 추 대표가 “촛불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박 대통령에게 하야를 비롯해 질서 있는 퇴진 등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추 대표는 박 대통령 탈당과 질서 있는 퇴진을 통한 거국과도내각 구성 관철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이를 거부할 경우 하야에 대한 적극적 목소리나 탄핵 수순 절차 밟기의 명분 삼기로 ‘출혈의 최소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양측의 딜레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당 등이 빠진 영수회담에서 자신의 거취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 추 대표 면전에서 제1야당 요구를 거부하기도 쉽지 않다. 헌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하야 대신 외치만 손에 쥔 2선 후퇴 카드 제안은 촛불정국에 기름을 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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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국에 휩싸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tlsgud80@]
◆영수회담 딜레마…빈손회동 양쪽 다 부담
추 대표도 비슷한 양상이다. 단독 영수회담이 빈손 회동으로 귀결될 경우 당 내부는 물론, 범야권 공조에도 균열이 발생한다. 야권 지지층으로부터 “차려놓은 밥상을 걷어차느냐”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박 대통령이 추 대표가 제안한 카드 중 일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야권이 쌍수 들고 환영 논평을 낼 입장도 아니다. 민주당 단독 회담으로 얻은 결과물이 범야권과 촛불민심의 정당성을 가질지도 의문이다.
그간 영수회담은 교착 상태의 물꼬를 트기는커녕 정국이 격랑 속으로 빠지는 단초로 작용했다는 점은 제1야당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한다. 실제 참여정부 때인 2005년 9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지만, 합의문조차 도출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가 고조된 2013년 9월 추석을 앞두고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여야 회동을 가졌다. 천막농성 47일째였던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는 수염을 기른 채 국회 사랑재에서 박 대통령과 회동에 나섰지만, 정국은 한층 꼬여버렸다. 박 대통령의 불통과 추 대표의 단독 플레이가 맞물릴 경우 예상치 못한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여론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들이 바라고 있는 모습은 아니다”라며 “지금은 국민의 의견을 모아서 가는 국면이지, 야당이 주도권 잡기를 위한 행보를 하는 국면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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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마친 후 국회를 나가며 정 의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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