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밀정'이라는 영화를 봤다. 신념에 찬 독립운동가의 일제를 향한 투쟁, 일제에 대한 부역과 독립운동 사이에 갈등하는 조선인 출신 일제 경찰의 고뇌 그리고 그 두 주인공 사이의 갈등을 시대 상황에 맞게 잘 그려낸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점은 자신이 속해 있는 '국가'가 그들에게 도대체 어떠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면서까지 자신을 희생하였는가라는 의문이었다.
우리에게 '국가'는 가족, 회사 등과 같이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근본적인 수단이며, 경찰력을 통해 치안을 유지해 주고, 국방력을 통해 외국의 침입에 대비해 주는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그 '국가'는 경제력을 통해 일자리와 복지를 제공하여 개인에게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국가'가 타의와 강압에 의해 피탈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지내게 될까?
지배국의 2류 시민으로 분류되어 각종 수탈과 억압을 겪을 것이며, 지배국의 노예로서 지배국의 전쟁에 끌려가 총알받이로서 비참한 인생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를 잃은 우리 민족의 비참한 삶은 과거 731부대의 잔혹한 실험대상이 된 우리 선조들과 지금도 한 서린 아픔 속에 살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얼마 전 국제적으로 이슈화되었던 군함도에서 비인간적인 노동에 시달리며 죽어갔던 우리 선조들을 보면서 알 수 있으며, 그 비참한 형상은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
또한 ‘국가’를 잃은 인간의 아픔은 IS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타국의 종교와 신념을 강요받고, 그것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고통 속에 죽임을 당하는 시리아, 이라크 국민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으며, 그러한 모습을 통해 ‘국가’를 상실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까지 비참해 질 수 있는가를 현시대에서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영화 ‘밀정’에서처럼 그토록 투쟁하고 희생하였던 이유는 위와 같이 ‘국가’를 상실한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의 터전이자 희망인 ‘국가’를 되찾고, 그것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평온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아니었을까?
오는 11월 17일은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인 순국선열의 날이다.
순국선열의 날에는 내 삶에 영화 ‘밀정’에 나오는 주인공의 삶을 한번 투영해 보는 게 어떨까? 그들이 왜 그토록 자기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국가’를 되찾고 싶었는지 음미해 보고, 그들이 그토록 되찾고 싶은 ‘국가’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현재 어떠한 의미와 가치로서 다가오는지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우리는 순국선열의 피와 희생으로 남긴 ‘국가’를 소중히 다루고 보존하고 계승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는 파시즘이 주창하는 것처럼 ‘실체가 없는 국가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니라 ‘인간의 삶의 터전인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답답한 현시대의 상황과 장기간의 경기불황으로도 많은 국민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국가’를 생각하고 ‘국가가 지향하는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현재보다 더 부강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순국선열이 우리에게 ‘국가’를 남긴 이유도 우리 민족에게 ‘국가’를 부패와 허약함으로 인해 상실하지 말고, 투명하고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여 국권피탈과 같은 민족의 아픔을 겪지 말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우리는 순국선열이 남긴 ‘국가’의 소중한 가치를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 되며, 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하여 그들의 희생이 무의미한 희생이 되지 않도록 그들이 남긴 ‘국가의 가치’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