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혜란 기자 = '정부의 밀실 추진→지역 주민·시민단체의 반발→극심한 갈등'. 정부가 국책사업을 진행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공식이다. 평택 주한미군기지 이전, 밀양 송전탑 건설, 제주 해군 기지 건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모두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경남 거창 군민도 정부가 학교 밀집 지역에 교도소를 유치하려는 계획을 감추고 사업을 추진했다가 나중에 이 사실이 드러나자 거세게 반발, 주민과 협의할 것을 요구하며 3년째 싸우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대표발의한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 및 해결에 관한 법률안'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법의 핵심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사업을 추진할 때 사전에 주민의 입장을 듣고 협의하도록 한 것이다. 제10조에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의 장은 공공정책을 수립·추진함에 있어서 수립·추진하려는 공공 정책의 내용을 공고·공람하고 설명회를 개최해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규정을 넣었다.
또 추진하려는 사업이 주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하는 '갈등영향분석'을 실시하고 '갈등관리심의위원회'가 이를 심의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갈등 조정이 필요한 경우엔 갈등조정협의회가 가동해 대안을 만들도록 했다.
이 법은 세월호 참사, 경남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용산 참사 등 갈등의 현장에서 시민의 편에서 싸워온 박 의원의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거리의 변호사'로 활동했던 그는 현장에서 관련 입법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국회 입성 5개월여 만에 성과물을 내놨다.
지난 7월에는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에는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주의 군민, 제주 강정마을과 송전탑 문제로 오랜 시간 한전과 갈등 관계에 놓인 경남 밀양 주민이 참석해 피해 사례를 공유하며 의견을 개진했다. 박 의원이 당초 마련한 원안은 피해 주민과 전문가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며 다듬어졌다.
현재 공공갈등관리에 관한 법령으로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의 갈등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이 대통령령으로 있지만, 법 적용 대상에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을 배제하고 있으며 강제성이 없어 갈등 중재 장치가 되지 못 하고 있다. 17대, 18대, 19대 국회 내내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중재하자는 취지의 법이 발의됐지만 여야 간 이견으로 폐기돼 제정에는 실패했다.
이번에도 법안 처리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권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통제 장치를 마련하는 데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박 의원은 "(법안 원안 통과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이 법 내용의) 반이나 1/3만이라도 내용이 담긴 법이 통과돼 지금처럼 주민이 사전에 설명도 듣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이나 네덜란드, 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 주민이 충분한 설명을 듣고 협의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법과 제도가 마련돼 있다. 미국에는 '공공규제위원회'가 있어서 분쟁 조정 역할을 하며 검증 과정에서 사업이 취소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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