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는 과거 블라디미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강력한 지도자로 추켜세우는 등 러시아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이런 그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이 됐으니 푸틴 대통령으로선 쌍수로 환영해야 하겠지만 미국이 더 이상 러시아의 적이 아니게 된 것은 푸틴으로서 마냥 좋아할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 세계가 지난주 미국 대선 결과를 주목했지만 러시아의 관영 TV들은 미국 대선을 러시아의 최근 총선보다 더 대대적으로 방송했다.
트럼프의 승리 소식에 러시아의 일부 인사들은 즉각 기쁨을 드러냈다. 러시아 하원 의원들은 박수를 쳤고 빅토르 나자로프 옴스크 주지사는 푸틴의 통합러시아당이 미국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러시아 투데이 TV의 마가리타 시모얀 국장은 미국 국기를 자동차 창문에 꽂고 모스크바 도로를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고위 관료들은 그보다 훨씬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트럼프의 당선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이 있다고 말했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트럼프의 말보다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당선이 과연 러시아에 진짜 득이 될지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과거 러시아 관영 매체는 미국을 러시아의 적으로 그렸다. 이들은 미국이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를 혼돈에 빠뜨렸고 러시아마저 같은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유럽통합 운동인 유로마이단을 조직하고 유럽으로 하여금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게 했다고 선전했다.
지난 5년 간 미국이 적국이라는 인식은 러시아 국민들의 삶으로 파고들었다. “오바마는 쓰레기(Obama is a wanker)”라고 적힌 자동차 스티커가 유행처럼 번졌고 카페에서 미용실까지 “오바마는 받지 않습니다”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런 환경에서 푸틴이야말로 미국에 대항하고 러시아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그려졌다.
클린턴이 이번 대선에 당선됐다면 이 같은 인식이 이어졌겠지만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런 인식은 사라지게 됐다. 이제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면 앞으로 러시아에 닥칠 모든 경제 사회적 문제들의 책임을 돌릴 적국이 사라져 오히려 푸틴의 정치적 입지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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