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는 산업은행이 비금융자회사 매각이란 경직된 원칙에 매몰돼 주가가 최저가 수준임에도 매각을 강행한다는 점이다.
이는 3조2000억원이란 혈세가 공중분해되는 것은 물론, 주식시장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줘 25%란 대우건설 개미투자자들에게도 손실을 끼치는 중대 실수다.
대우조선해양 등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이 부패와 부실에 휘말린 것에 대한 트라우마로 대우건설 매각을 졸속 추진하면서 또 하나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산업은행이 밝힌 사모펀드 만기 전 매각에 대한 이유다. 산업은행은 주택건설 경기 등을 감안할 때 대우건설 주가가 회복되기 힘들다는 점을 조기 매각 이유로 들었다. 이는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을 내놓으면서 파는쪽이 "이 기업은 앞으로 가치가 회복되기 힘든 기업입니다"라고 시인한 셈이다.
이같은 점을 감안할 때 산업은행의 대우건설 매각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지난 10월 28일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 PEF(사모투자펀드) KDB밸류제6호가 지분 50.75% 전량을 매각하겠다고 나선 지 한 달도 채 안 돼, 회계감사 거절, 공매도 세력 결탁 가능성 제기 등 걸림돌이 될 만한 악재들이 잇따르고 있다. 직후 일주일간 대우건설 시가총액은 20%가 날아갔다.
이같은 매각작업의 최말단에 박창민 대우건설 사장이 있다. 산은의 낙하산 인사란 비난을 무릅쓰고 사장 자리에 앉은 박 사장의 임무는 내부 인사가 하기 어려운 구조조정과 부패청산이다.
아직 취임 초기이긴 하지만 산업은행이 내년 상반기로 매각 시점을 못박은 이상 박 사장에게 남은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현재까지 보여준 박 사장의 모습은 이같은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24일 예정된 조직개편에 나타난 윤곽에선 뚜렷한 구조조정의 밑그림이 없다. 비정규직을 자르고 보직변경에 따른 자연도태를 기다리는 정도다. 사다리를 만들어 올라가 감을 따야 하는 사람이 누워서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격이다.
부패청산 작업도 뚜렷한 실적을 기대하기 힘들다. 분기보고서에 대한 회계감사 거절, 공매도 세력 결탁 등으로 인한 주가 폭락 등의 악재가 튀어 나온 건 그의 취임 이후다. 일각에선 해외 미청구 공사 등의 문제를 빌미로 그가 국내 주택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할 명분을 얻었다는 분석도 있다.
박 사장은 선택의 기로에서 힘든 결단을 해야 한다. 외부 낙하산 인사란 비판 속에서도 박 사장에 대한 인선을 산은이 강행한 이유에 충실할 지, 대우건설의 장기적인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선장이 될 지 말이다. 둘 중 아무 것도 아니라면 박 사장은 산은이 만든 또 하나의 실패한 낙하산 인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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