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자-18면) 일승 양방웅의 노자와 장자 이야기<35> 상유이말(相濡以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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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1-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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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입니다. 이는 밤과 낮이 변함없이 순환하듯 자연적 규율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참여할 수 없는 일이고, 모두가 사물의 본성입니다. 어떤 사람은 임금의 지위가 자기보다 높다고 하여 목숨 바쳐 충성하고, 어떤 사람은 天을 생명의 아버지로 여기고, 종신토록 경애하는데, 天을 초월해 있는 天地 만물의 진짜 임금인 道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지요!

고기들이 물이 말라 모두 메마른 땅위에 놓이니, 그들은 서로 습기를 뿜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주어 연명합니다. 이를 ‘상유이말(相濡以沫)’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강이나 호수에서 자신이 물고기임을 잊고, 누구에게도 의지함이 없이 자유롭게 헤엄치며 사는 것보다 못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살이가 힘드니까 혈연, 지연, 학연 등을 찾아 ‘상유이말’하며 끼리끼리 돕고 살려고 하지만, 그보다는 명성과 재물 등에 관한 욕심을 버리고 道의 경지에 들어가 서로를 잊고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요임금의 명성을 찬양하고 걸임금을 폭군이라 비난하지만, 道 속에서 두 임금을 잊고 사는 것만 못한 것이지요.

천지는 나에게 몸을 주어 안아주고[재아이형(載我以形)]; 삶 주어 일하게 하고[노아이생(勞我以生)]; 늙음을 주어 한가롭게 하고[일아이로(佚我以老)]; 죽음을 주어 쉬게 합니다[식아이사(息我以死)]. 그러므로 나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하는 것이고, 나의 죽음 또한 소중하게 맞이해야하는 것입니다.

배를 골짜기에 감추고, 어망을 늪에 숨겨두고서, 안전하게 두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밤에 나쁜 사람이 와서 가져가버려도, 잠자는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작은 것을 큰 것 속에 감추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天下 속에 감추어둔다면 잃어버릴 수가 없지요. 이야말로 위대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잃어버릴 것이 없는 경지에서 道와 함께 노닐지요.

사람들은 자기가 오로지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기뻐하는데, 만일 사람의 모습이 자연처럼 끝없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한다면, 그 기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젊어서나 늙어서나 변함없이 바르게 생활하고[善少善老]; 시작할 때나 마무리할 때나 한 결 같이 바르게 일하는[善始善終] 그런 훌륭한 사람을, 사람들은 본받으려고 합니다. 하물며 만물의 뿌리이며 모든 변화의 근원인 하나(一)를, 어찌 본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하나가 바로 하나님이며, 만사만물의 대종사(大宗師 큰 스승)인 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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