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선들이 설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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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1-2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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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선 기자

아주경제 이한선 기자 =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당시에는 이렇게 무지막지한 일을 저지고 있는 것을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이 정부 출범 2년차에도 조짐이 있었다.

이전 출입처인 다른 부처를 담당할 때 일이다.

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의 한 회의에서 ‘방송독과점’ 문제를 지적하면서 기존에 유료방송의 몸집을 키워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담당 부처의 기존 정책 방향과 다른 말을 한 적이 있다.

한ㆍ미 FTA 발효에 대비해 외국 제작사에 맞설 수 있는 체력을 갖춘 국내 경쟁사를 키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 당초 해당 부처의 정책 방향이었다.

규제 완화로 몸집 불리기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박대통령의 발언이 튀어나오면서 해당 부처가 혼란에 빠지고 정책 목표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통령의 발언이 뜬금없다는 반응이 많았고 부처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정확한 의중이 뭔지 어리둥절했고 물어봐도 곤혹스러워했다.

무슨 맥락으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니 답답해했다.

그 때 공무원들의 반응 중에는 발언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비선’을 통해 입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이런 얘기들을 기사로 쓰고 브리핑에서 담당 공무원이 혼란스럽다고 한 말을 그대로 썼는데 담당자는 노발대발했다.

청와대에 맞서는 발언으로 비칠까 우려한 것이다.

최근 불거진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당시 해프닝이 떠올랐다.

'비선'이란 말이 2014년 초에도 공무원들 입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 해 11월 말 최순실의 전 남편 정윤회 관련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이 불거지기도 전이다.

최근에야 그 당시 ‘비선’이 누구인지가 드러나면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알 수 있었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당시 해당 기업 부회장이 물러나도록 요구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조 전 수석이 당시 직함이 있었기에 비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를 밝혀낸 곳이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하는 특별수사본부다.

압력을 받은 기업 부회장은 2013년 말부터의 청와대 요구에 결국 2014년 말 퇴진했다.

2년 반이 지나 출입처가 바뀐 부문에서도 역시나 비선의 위세가 미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평생교육단과대 사업 반대에서 시작한 이화여대 사태의 끝에도 딸 정유라에 대한 특혜가 드러나는 등 최순실이 있었다.

면접장에 반입해서는 안되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걸고 들어가는 편법과 면접 위원들의 불공정한 심사로 인한 특혜로 점수가 더 좋았던 두 명이 밀려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곳곳에 비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진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떤 원로 한분은 국민들이 박대통령 부모의 후광 효과의 영향으로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최순실 같은 사람을 양산하는 인성을 도외시한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제2의 최순실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다.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보다는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아이 같은 어른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 시스템도 뜯어 고쳐야 하고, 개헌을 하든지 해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등의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이번 사태의 교훈이 보다 투명한 사회가 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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