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분야나 다른 제조산업과 달리 의약품은 최종 제품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즉 동물실험에서 독성이나 유효성을 확인하고 건강한 성인에서 임상 1상을 마친 뒤 환자에게 투여해 적절한 용법용량을 확인하고 대규모 환자에게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임상 2상, 3상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러한 신약 개발과정에서 제약회사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결정(Decision Making)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의 최종 성공률은 0.01%에 불과하다. 즉 1만분의 1인데 ‘만의 하나’ 라는 말을 사용해 무언가를 선택하게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 확률을 놓고 신약개발을 진행할지 말 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더구나 만분의 일 확률에 기업이 사활이 걸린다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약회사들은 이러한 낮은 확률에서 개발하는 물질의 안전성 및 유효성을 평가하고 아울러 경쟁회사들의 개발 속도도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 환자들의 치료 패턴과 약가, 마케팅 요인도 종합적으로 진단해야 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변수와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제품이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임상시험 중에 중대한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경쟁회사가 동일기전의 약물을 먼저 발매하거나, 나아가 약효가 기성 약물보다 개선된 제품이 출시될 경우 회사들은 약물 개발의 ‘계속 진행’ 혹은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만 할 것이다. 중단 시 큰 손해를 입지만 유효성의 문제로 임상이 중단될 경우는 다른 질환에 대한 효능이 입증되는 사례가 있어 해당 적응증으로 겨냥, 개발해 우수한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신약 개발 과정의 임상실패는 이처럼 개발회사에 비용적 손해를 입히지만 더 우수한 의약품 개발을 위한 경험과 다른 치료제 개발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제약현장에서 바라볼 때 우리나라 제약산업이 지금 키워야할 능력은 바로 이러한 의사결정 능력이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이제 겨우 27개의 국산 신약을 개발했고 기술수출이나 신약후보물질의 라이선스 아웃 경험이 거대 다국적제약사에 비해 부족하다. 라이선싱 파트너의 의사결정을 보며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배워야할 때다. 10여년의 R&D 투자를 감내해 속속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만큼 제약사들의 계약 성사 혹은 중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다.
2015년 전 세계 신물질의약품 파이프라인은 7200여개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제약협회가 회원사와 일부 바이오벤처를 대상으로 조사한 파이프라인은 800여개였다. 적지 않은 수의 신약 파이프라인이 블록버스터로의 재탄생을 고대하고 있다. 이제는 경험도 쌓여가고 R&D 투자비용도 증가하며 무엇보다도 제약회사들의 신약개발 의지가 어느 때보다 고취돼 있다. 분명한 것은 신약이 최종 산물로 나오기까지 우리 모두에게 인내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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