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오진주 기자 = “해외에선 리츠를 상장할 때 상장심사는 당연히 받지만, 인가를 받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상장심사도 받고 인가도 따로 받으니 시어머니가 두 분 계신 거죠.”
28일 서울 중구 '제이알투자운용' 사무실에서 만난 김관영 한국리츠협회 회장은 임기를 끝내며 가장 아쉬운 점에 대해 리츠법 규제를 완화하지 못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회장에서 물러난다.
리츠(REITs)는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고 수익을 돌려주는 부동산간접투자기구다. 일반인도 부동산에 투자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 구조를 만든다는 취지로 2001년 국내에 도입됐다.
하지만 약 15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일본 등 리츠 선진국에 비하면 국내 리츠 시장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의 리츠 시가총액은 약 1000조원, 일본은 약 100조원에 이른다. 한국은 약 1000억원이다.
김 회장은 이에 대한 원인으로 리츠법 규제를 꼽는다. 현재 국내 리츠는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에서 상장심사를 받고 국토교통부에서 인가를 받는다. 그는 “정부는 상장심사를 엄격하게 해 철저하게 관리·감독하고, 투자운용사가 불법적인 거래를 했을 때 허가를 취소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현재 포지티브 방식인 리츠법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지금 리츠에 대한 규제는 ‘이것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며 “하지만 부동산 금융 시장은 새로운 상품이 나오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 그는 리츠는 개인의 돈을 대신 운영하기 때문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투자운용사는 하나만 잘못해도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시장에게 평가받겠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이전에 비해 규제가 많이 풀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는 리츠법 전면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금 정국이 혼란스러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아쉬움도 내비쳤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실제 김 회장의 재임 기간 동안 리츠 시장의 규모는 커졌다. 지난 4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리츠의 자산운용 규모는 18조원을 돌파했다. 평균 배당 수익률도 8.1%를 기록해 전년(6.1%) 대비 1.9%포인트 증가했다.
리츠 규모가 커진 데는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최근 부동산 업계는 기업형 임대주택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건설사 뿐 아니라 통신사·은행 등 다양한 기업들이 뉴스테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KT는 지난 7월 부동산 관리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를 통해 옛 KT 동대문 지사 부지에 ‘리마크빌'이라는 프리미엄 임대주택을 공급했다. KEB하나은행은 유후 영업지점 부지를 리츠에 매각해 2019년까지 뉴스테이 1만여가구를 짓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 회장이 대표로 있는 제이알 투자운용도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 5차 뉴스테이 공모사업에 참여해 내년 1월 입주자를 모집한다. 김 회장은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최소 2~3년 동안 사업성을 지켜봐야 하지만, 개인 간의 부동산 거래는 상당히 위험하므로 앞으로 기업형 임대주택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리츠는 개인 투자자에게도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말한다. 건물 가격은 주식처럼 갑자기 오르진 않지만 안정적인 배당수익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형 리츠회사가 투자하는 부동산은 개인이 투자하는 곳보다 현금 흐름이 안정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아직 일반인들에게 리츠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그동안 리츠는 연기금같은 기관들 위주로 상품을 구성해 ‘그들만의 리그’로 불렸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에게 리츠를 알리기 위해서는 상품 홍보도 중요하다. 현재 미국·일본 등에선 은퇴 생활자를 대상으로 한 리츠 상품이 많이 출시됐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에도 요즘 꼬박꼬박 임대 수익이 들어오는 상가나 주택에 관심을 갖는 은퇴 생활자들이 많아 졌다”면서 “이를 더 전문적으로 관리해 수익을 넘겨주는 게 바로 리츠”라고 설명했다.
리츠 시장이 커질수록 시대 흐름에 맞는 상품 개발도 필요하다. 김 회장은 투자 구조를 짤 때 창의성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그는 예로 제이알 투자운용의 사례를 소개했다. 공실이 많았던 충무로의 오피스 건물을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호텔로 리모델링해 투자수익을 만든 것이다.
그는 환경이 바뀌면 건물의 용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회장은 "30년 뒤에도 그 건물이 계속 호텔로 남아있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있는 이 건물 용도를 바꾸면 더 높은 수익을 만들텐데’라는 생각이 들면 주변 교통과 생활을 다 파악해 상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끊임없이 도시가 재생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도시 콘셉트와 디자인이 리츠업계의 관심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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