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달 4일(현재시간)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앞둔 이탈리아 로마에서 27일 시민들이 '투표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국민투표 반대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상원을 축소해 정치 비용을 줄이고, 정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추진되는 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아주경제 윤은숙 기자 = 이탈리아에서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에는 마테오 렌치 총리의 정치적 운명이 걸려있는 만큼 부결될 경우 정치적·경제적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 부결 땐 렌치 총리 사퇴, 극우 정치세력 부상 가능성
이번 헌법 개정안의 골자는 비대한 상원의 개혁이다. 하원과 동등한 입법권한을 가지고 있는 상원의 역할을 대폭 축소한다. 315명이나 되는 비대한 상원을 고치는 것도 포함된다. 상원의 지나치게 강력한 입법권한은 그동안 각종 법안 처리에 장애물이 됐다.
때문에 각종 법안의 입법의 좌절을 겪었던 마테오 린치 총리는 자신의 총리직을 걸고 상원의원을 상원의원을 315명에서 100명으로 줄이고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이번 개혁언에는 지나치게 커진 지방정부의 권한을 중앙으로 가져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번 국민투표는 핵심내용과는 상관없이 정치적 대결로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개혁안 자체보다는 린치 총리 하의 정부에 대한 심판론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 반이민정당 북부동맹,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FI 등은 국민투표에서 부결을 주장하면서 정치적인 입지를 넓히고자 하고 있다.
게다가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은 모두 유로존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정당들이라, 이들의 세력이 커질 경우 더욱 큰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이탈리아의 이번 선거결과는 유로존의 붕괴를 알리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반대가 찬성을 앞서는 상황…은행 연쇄부도 우려 커져
연초에는 국민투표 찬성의 여론이 다소 앞섰지만, 이번 투표가 정치적 대결 양상으로 가면서 반대 여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부동층의 비율이 높아 결과는 다소 예측하기 힘들지만, 부결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탈리아 여론조사 기관 Ixe가 지난 지난 1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반대'는 한주 전보다 2% 포인트높은 42%를, '찬성'은 동일한 37%를 기록했다.
총리 사퇴이후 혼돈 상황에서 가장 크게 부상하는 것은 이탈리아 은행들의 연쇄부도다. 이탈리아의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다면 최다 8개의 이탈리아 은행이 도산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8일 전했다.
렌치 총리는 은행들의 채권을 보유한 수백만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EU가 요구하는 부실은행의 청산을 피하고, 시장 기능을 통한 해결책 마련을 추진해왔다.
3위 은행인 몬테 데이 파스키 은행에 대해서는 JP모건이 마련한 증자안을 적용하고 소형 은행들에 대해서는 민간구제기금인 아틀란테가 개입하는 것 등이 정부의 계획이었다.
국민투표가 부결에 따라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이탈리아 은행들의 자본 건전화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게 되면 도산할 수도 있다.
자산 기준으로 3위 은행인 몬테 데이 파스키 데 시에나와 중형 은행인 포폴라레 디 빈첸자, 베네토 방카, 카리게, 지난해 구제금융을 받았던 4개 소형 은행인 방카 에트루리아, 카리키에티, 방카 델레 마르케, 카리페라라 등이 위험도가 높은 은행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몬테 데이 파스키 은행이 50억 유로 규모의 증자와 부실 채권 재조정이 실패하게 되면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을 수 있다. 시장 내 불안감이 커지면서 시장을 통한 해결책을 찾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최악의 경우에는 부실한 8개 은행이 모두 청산 절차에 들어갈 수 가능성이 있다고 FT는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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