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신은 이 나라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집회 방송차량 위에서 이어진 시민 자유 발언. 이렇게 외친 사람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 대응 태도를 문제 삼았다. 1960년 4·19 혁명 절정기에 초등학생까지 가두시위에 나섰던 사진이 머리를 스쳤다. 아, 촛불집회도 정점을 향하고 있구나!
방송차량에서 멀지 않은 통인동 한 커피 숍. 따끈한 보리차를 시민들에게 베풀었다. 1987년 6월 항쟁 때도 이런 가게가 있었지. 몇몇 여고생들은 스마트폰의 1인 미디어를 통해 행진 전체 상황을 확인하기에 바빴다. 스마트폰은 군중과 경찰 모두의 일탈을 막는 파수꾼이었다. 100만 인파를 처음 찍었던 지난 달 12일 3차 집회 때도 그랬다. 내자동 경찰 차벽을 넘어가던 남자는 군중들이 스마트폰을 들이대자 풀이 죽었다. 광장은 그야말로 SNS와 1인 미디어 놀이터였다.
2016년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촛불 혁명'이자 '미디어 혁명'으로 부를 만하다. 촛불을 광장에 모은 건 미디어였고 그 미디어에 활기가 넘치게 한 건 촛불이었다. 국민의 힘에 주목하는 쪽은 전자를, 미디어의 역할에 점수를 주는 쪽은 후자를 선택할 수 있겠다. 일부 매체에 엄중한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그게 혁명을 이끈 미디어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꼭 짚어야 할 것은 '종편의 역습'이다. 종편 TV들은 대세가 기울자 관망 자세에서 벗어나 날을 세우고 나섰다. 보수의 나팔수 종편을 기대했던 정권으로선 꽤 당황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도 적잖게 노출됐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다른 매체 보도 내용을 확대 재생산하는 광경이 수 없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취재경쟁이 불붙으면서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의혹들이 차례차례 사실로 드러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검찰은 평가받을 부분도 있지만 언론이 제기한 의혹을 확인하는 데도 힘 부쳐했다. 대통령 단임제가 시행된 지난 30여년 동안 대형 스캔들은 반복됐지만 이번처럼 깊숙이 파헤쳐지진 못했다. 정보 유통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발해진 덕이다. 전 국민이 제보자이자 감시자가 된 것이다.
뉴 미디어의 활약은 광장에 촛불이 켜진 뒤 더 돋보였다. 전 세계가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 본 비폭력 평화시위는 인터넷 미디어 없이 가능했을까. 해외 교포들이 촛불을 든 것도 마찬가지다. 모바일 뉴 미디어를 통해서든 종편을 통해서든 시위가 생중계되는 상황은 촛불 든 시민들에게도, 민심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운 청와대에도, 차벽 쌓고 경비 대책에 부심한 경찰에게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지난 달 29일 대통령이 3차 담화를 발표하자 일부 방송과 신문이 즉각 페이스북 라이브 투표를 실시한 것도 뉴 미디어의 존재를 부각시켜줬다. 결과는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그는 치욕스런 퇴진을 자초하는 듯하다. 혁명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촛불이 끝나면 권력은 소수에게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마저도 "새로운 대한민국 우리가 만든다"는 광장의 함성을 외면한다면 후회는 뻔하다.
(아주경제 중문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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