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터키가 지난 주말 의원 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의 전환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역사적인 갈림길에 서게 됐다.
대통령에 권한을 집중시키는 이번 개헌안을 둘러싸고 쿠데타와 각종 테러로 불안정한 터키 사회가 다시 안정을 찾게 될 것이라는 주장과 에르도안의 장기 독재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이 맞서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약 100년 전 터키가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제국에서 세속주의 민주공화국으로 탈바꿈한 이후 가장 중요한 정치적 변화를 맞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현지시간 10일 여당이 의회에 개헌안을 제출한 뒤 몇 시간 후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38명의 사망자를 낸 연쇄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쿠르드계 과격단체는 터키 경찰을 겨냥한 이번 공격이 자신의 소행임을 자처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격이 발생한 이후 “터키가 미래를 위해 한발 나아갈 때에는 늘 테러조직으로부터의 폭력과 혼돈의 상황을 겪었다”며 이번 테러와 개헌을 연결시켰다.
이번 개헌안은 의회 표결을 거쳐 내년 3~4월 중 국민투표에 부쳐지며 최종 통과시 2019년부터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개헌안에 따르면 총리직이 사라지고 대통령이 부통령과 장관들을 임명하여 내각을 운영한다. 또한 5년의 대통령 임기는 1회 중임이 가능하며 현재 대통령 임기는 보장되기 때문에 이론상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장 2029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다. 에르도안은 2002년부터 총리를 거쳐 대통령으로 집권 중이다.
이 때문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 독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에르도안은 지난 7월 쿠데타 이후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국가안보 위험을 이유로 4개월 간 군부 쿠데타 배후 세력을 포함해 공무원 1만 명을 해임하고 언론사 15곳을 폐쇄했다.
야당 의원들은 개헌안에 거세게 저항했다. 세속주의 의원들과 친쿠르드계 의원들은 여당과 일부 민족주의 의원들이 쿠데타 실패 이후 독재체제를 구축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의 레벤트 고크 의원은 “우리가 쿠데타에 반대하듯 이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개헌에 반대할 것”이라며 “개헌 통과는 터키를 더욱 분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 측근들은 개헌안이 터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인 에르도안 대통령에 권한을 몰아줘 정치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개헌은 에르도안의 불안을 달래줄 것이다. 지난 2년간 늘 주도권 싸움과 권력 상실을 우려했다. 확실히 안정감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의회에서 개헌안이 가결되려면 총 550표 중 330표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여당 의석수는 316석으로 여당 의원 모두가 찬성해도 14표가 부족하다. 이에 따라 여당은 39석을 차지하고 있는 소수당 민족주의행동당 의원들과 밀실 협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민행당 당수는 개헌 찬성 의지를 드러냈으나 당내에서 일부 의원들은 반발하며 탈당 움직임도 포착된다.
개헌이 의회에서 통과될 경우 전문가들은 에르도안에 대한 지지도가 50~55%로 비교적 높기 때문에 국민투표에서도 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11월 말 기준으로 터키 여론조사 업체에 A&G에 따르면 응답자 중 45.7%는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한다고 답했고 41.6%는 반대를 표했다.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 비율은 12.7%였다. 지난여름만 해도 대통령 중심제 찬성 의견이 37.4%였던 것을 감안할 때 찬성 쪽으로 여론이 기울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터키 내 안전에 대한 불안도 대통령 중심제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영국 소재 컨설팅업체인 베리스크 매이플크로프트의 안소니 스키너 애널리스트는 “10일 발생한 폭탄 테러는 테러와 국가전복을 꾀하는 반란군에 맞서기 위해 에르도안이 완전한 집행권을 쥐어야 한다는 명분을 제공했다. 에르도안은 여론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할 줄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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