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지금으로부터 4년전인 2012년 12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선되자마자 중국 언론들은 박 대통령의 일생을 집중 조명했다. 박대통령이 유년 시절 삼국지를 즐겨 읽었으며, 첫사랑은 삼국지의 조자룡. 20대 시절 시련이 닥쳤을 때 마음을 다스리게 한 책은 중국 철학자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사'. 유창한 중국어 실력.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비극. 국가와 결혼한 미혼의 여성지도자. 매력넘치는 박 대통령의 스토리에 중국인들은 박 대통령에 열광했다. 중국에 호감을 느끼고 있는 박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 시절 미국에 편중됐던 한국의 외교를 바꿔놓은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해졌다. 이 시점부터 한중관계는 절정을 향해 급상승해가기 시작한다.
2013년 1월 박 대통령은 김무성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당선인 특사단을 중국에 파견했으며, 특사단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면담해 박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에 화답해 중국은 2013년 2월 25일 박대통령의 취임식에 중국내 여성으로서는 최고위직인 류옌둥(劉延東) 부총리(공산당 정치국위원)를 단장으로 하는 특사단을 파견했다. 이렇게 박 대통령은 새로운 한중관계의 시작을 알렸다.
◆순풍에 돛단 한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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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마주앉은 박 대통령은 곧바로 다음달인 6월 27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정상회담 분위기는 그야말로 화기애해했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에게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다"고 했으며, 국빈만찬에는 '고향의 봄'이 연주됐다. 28일 오찬장에는 시 주석과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함께 동석하는 파격환대를 했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의 모교인 칭화(淸華)대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유창한 중국어를 곁들인 강연을 했다. 방중 마지막 일정은 시 주석의 정치적 고향인 시안(西安)방문이었다. 중국언론들은 박대통령의 일정을 상세히 전하며 "북한 대신 한국을 한반도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언론들은 "일본을 따돌린채 한중 양국이 밀월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평론했다.
2014년 1월 중국 전역은 유례없는 한류바람으로 끓어올랐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내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 당시 중국에는 어딜가도 별그대 이야기였으며, 치맥열풍이 불었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한국의 이미지에 매료된 중국인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한국으로 몰려왔다. 그해 중국인 관광객은 600만명을 기록하며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한국산 화장품, 식품이 불티나게 팔려갔으며 경제교류는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시진핑, 선물로 조자룡 족자
2014년 7월3일에는 시주석이 한국을 국빈방문했다. 당일 박대통령은 중국인이 좋아하는 붉은색 재킷을 입고 시진핑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스젠더우취날러(時間都去哪了, 시간이 다 어디로 갔냐는 뜻으로, 바쁜 시진핑의 일정에서 비롯된 당시 유행어)'라는 말을 중국어로 인용해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시 주석은 방한당시 박 대통령에게 '첫사랑'인 조자룡 족자그림을 선물로 증정했다.
시 주석과 함께 방한한 펑리위안 여사는 창덕궁을 들러 "대장금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라며 한국에 대한 친밀감을 드러냈다. 이같은 일화들은 중국에 고스란히 소개됐다. 양국 지도자의 친밀감에 중국인들은 "한국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의 언론들은 시주석 방한 이후 "과거 양국관계가 정냉경열(政冷經熱)이었다면 이제는 정온경열(政溫經熱)의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평가했다.
◆화룡점정 톈안먼 망루외교
2015년 9월3일 중국은 대대적인 전승절 열병식을 거행했다. 열병식 참석을 두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고려해 참석하면 안된다'는여론에 맞서 고민하던 박 대통령은 결국 열병식 참석을 결정했다. 시진핑 주석 오른쪽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그 오른쪽에 박 대통령이 위치했다. 박 대통령 오른쪽에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섰다.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정상들 사이에 한국의 대통령이 선 것이다. 미국의 전통 동맹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어색한 장면이었다. '망루외교'로 불리는 이 장면은 박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를 얼마나 중시하는 지를 보여줬으며, 당시 한중관계가 절정을 구가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열병식 전후로 중국인들은 박 대통령을 '퍄오제(朴姐, 박누나라는 뜻)'이라고 부르며 환호했다. 지도자에 대한 호감도는 국가에 대한 호감도로 고스란히 전이됐다. 레스토랑이나 관광지에서 한국인을 만난 중국인들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을 베풀었다. 중국내 한국식당들은 박대통령과 시주석이 악수하는 사진을 내걸었다. 우리나라 농식품부와 aT(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중국의 지방도시를 찾아 한식박람회를 개최하기라도 하면 구름떼같은 인파가 모여 떡볶이 비빔밥 김밥 등을 시식했다.
◆수교이래 최상의 한중관계 평가
2013년 5월 중국에서 출간된 박 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絶望鍛鍊了我)'는 2015년 9월과 10월 두달 연속 전기서적분야 판매량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체 출판물 중 판매량 10위안에 들어 명실상부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자서전은 2015년에만 10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베이징의 서점에서 한동안은 이 책이 가장 잘보이는 위치를 차지했다.
2015년 11월1일 한일중 3국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리커창(李克強) 총리가 10월31일 한국을 방문해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신화통신은 "박 대통령은 취임후 시주석과 여섯번, 리 총리와 네번 만났다"며 이를 '정상회담의 일상화'라고 서술했다. 또 "수교 23년이래 최상의 한중관계'라고 평가했다. 이어 2015년 11월22일에는 한중FTA가 체결됐다. 그해 3월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우리나라가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후 양국 경제협력의 강도는 갈수록 강화됐다. 우리나라는 AIIB 지분율 5위의 국가다.
◆내리막길의 시작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한중관계는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것도 급전직하의 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2015년 12월29일 한일 위안부협상이 타결되자 중국측은 어리둥절했다. 그동안 일본의 과거사문제를 두고 공조를 해오던 한중 양국이다. 중국의 언론들은 "한국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굴욕적인 위안부협상에 사인했다"는 분석을 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한중관계는 여전히 훈풍으로 가득했다.
올 1월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급랭했다. 우리나라는 북한에 압박을 가해 핵포기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북한압박의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의 반응은 우리나라의 기대에 한참 못미쳤다. 중국 외교부는 반복적으로 '냉정과 자제'를 당부했고, 우리나라 국내에는 '망루외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조치가 미흡하다며 반중정서가 일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고, 제5차 핵실험을 진행하는 등 극단적인 도발을 이어갔고, 중국에 실망한 우리나라는 군사동맹국인 미국과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갔다.
◆사드배치, 무서운 후폭풍
그리고 지난 7월8일 한미 양국은 사드배치 결정을 발표했다. 그동안 중국은 2015년부터 고위급 관료를 수차례 한국에 파견해 사드배치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시 주석 역시 박 대통령에게 사드배치문제를 신중하게 접근해달라고 당부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배치결정이 발표하자 중국언론은 "한국이 중국의 등에 칼을 꽂았다" "박 대통령이 중국인들의 염원을 배신했다"는 등의 격한 반응을 내놓았다. 이후 중국인들의 박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역시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중국은 드라마와 영화 등을 관장하는 광전총국을 내세워 한국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허무하게 사그라진 한중밀월
중국의 경제제재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던 9월6일 박 대통령은 항저우(杭州) G20 회의에 참석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박 대통령은 "나의 넓지 않은 어깨에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이 있다"는 여성스러운 화법으로 사드배치에 대한 이해를 구했지만 시 주석의 표정은 싸늘했다.
10월 시작된 탄핵정국 속에 중국의 경제제재가 주춤하는가 싶더니, 지난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자, 중국은 다시한번 즉각 반발했다. 이후 중국은 문화계는 물론 산업계까지 경제제재를 강화해 나갔다. 중국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 역시 사그라들었으며, 그토록 활활 타올랐던 한중경제합작은 차갑게 식었다. 박 대통령이 갖은 노력끝에 최절정기까지 끌어올려놨던 한중관계였지만, 이제는 최악의 상황까지 급전직하한 한중관계만이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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