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법치국가에서 법 무시하라는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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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1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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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재천 금융부장]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를 놓고 법치국가의 원칙을 훼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법원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지만 금융감독원은 지급하지 않으면 대표이사 해임뿐 아니라 인허가도 취소하겠다고 경고했다. 초법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무릇 법치국가란 사람이나 폭력, 국가가 아닌 ‘법’이 지배하는 사회다. 모든 국가적 활동과 생활은 국민의 대표 기관인 의회가 만든 법률에 근거를 두고, 이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 게 헌법의 기본 원리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런 원리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대법원은 최근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되 소멸시효 2년(2015년 3월 이후 3년)이 지났으면 자살보험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에 대해 올해 두 차례(5월·9월) 소송에서 내린 최종 결론이다. 소송을 제기한 생명보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체 자살보험금(2465억원)의 81%인 2003억원이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대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보험사의 보험업법 위반 행위에 대해 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까지 지급하라는 강력한 압박이다. 업계는 “대법원 판결에 어긋나는 부당한 조치”라고 항변했지만 금감원은 “금융감독 당국의 정당한 책무”라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자 금감원의 감독권 남용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등 3개 보험사에 금감원이 징계를 통보했다는 뉴스를 접한 후 진웅섭 원장과 곧바로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경영자(CEO) 해임이나 인허가 취소까지 포함되는 중징계인데 상위기관인 금융위에 사전 통보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항의성 통화였다. 하지만 임 위원장도 금감원의 ‘무리수’를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논란이 지속되자 정치권에서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에 대해 3년간 보험금 청구 기간을 연장해주는 특별법을 발의했다. 중재를 해보겠다는 의도지만 여의치 않아 보인다.

현재 미지급 자살 보험금 규모는 삼성생명 1608억, 한화생명 900억, 교보생명 1134억원이다.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경영이 위태로운 수준까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돈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가 나오기 전까지 업계는 보험금을 지급할 경우, 최고경영자의 배임 시비가 걸려 향후 주주 반발 등 더 큰 문제가 예상돼 지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에 대한 보험사의 지급의무가 없다고 판단을 내린 후에는 금감원의 (일괄)지급방침은 당위성이 약하다고 강조했다.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지급을 강행했을 때 대외 신인도 하락 역시 무시하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발생할 일이다. 보험금을 지급하게 되면 자살을 방조하는 것을 넘어 ‘권장’하는 꼴이라는 주장이다. 미래의 보험계약자들이 이를 부정적으로 활용한다면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자연사를 몇일 앞둔 사람이 돌연 자살을 선택한다면 보험사들은 보험금을 더 지급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여전히 금감원의 입장은 단호하다. 대법원 판결과 별도로 보험업법을 위반(약관 준수 의무 위반)했다는 것이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며 신흥국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피해 갈 수 없는 구조다. 긴박한 상황에서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의 진흙탕 싸움은 진부하다 못해 한심해 보인다. 금융당국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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