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주요 외신들이 탄핵에 따른 파장을 평가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미국 언론들은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한국이 불확실성에 빠지면서 국제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북한이 미국까지 닿을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오랜 우방이었던 필리핀이 반미·친중 노선을 본격화하는 등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던 아시아 회귀 전략이 위기에 처한 만큼 미국이 가장 절실하게 강한 동맹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서 한국이 정국 혼란에 휘말리게 되어 유감스럽다고 전했다.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 대통령 탄핵은 국제 정치질서에 타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에 들어설 차기 정부는 미국에 대한 회의적 태도, 보다 유화적인 대북 정책, 한층 적극적인 친중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WSJ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 가결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탈리아의 개헌 국민투표 부결,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 이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지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울러 WSJ는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최종 통과되면 두달 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것이며 현재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는 진보 진영의 후보들은 대북 강경책이나 사드배치와 같이 미국이 추진하는 정책들에 상당히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진보 진영 후보가 당선될 경우 대북 정책을 과거 햇볕정책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며 현재 미국이 원하는 대북 강경책과 괴리가 생길 수 있다며 우려했다.
앞서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지난 4년간 강력한 대미 협력 의지를 보이며 미국에 '구애'하던 박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로 퇴진하게 되면 미국으로선 손해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며 한일 위안부협정 합의, 개성공단 폐쇄, 사드배치 결정 등을 대미 협력의 예로 열거하기도 했다.
미국 타임지는 대통령 탄핵으로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지만 야당과 촛불시위 민중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리더십의 부재는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미국의 노력에 상당한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크리스토퍼 그린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 연구원은CNN 사설을 통해 탄핵 가결 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분석했다. 그는 올해 북한이 두 차례 핵실험을 하고 인공위성인 광명성 4호를 발사하는 등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됐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린 연구원은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도발에 나설 경우 오히려 대북 강경책을 고수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이득을 생각해 도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아울러 그는 북한의 입장에서 한국은 전략적인 계산에서 후순위이며 트럼프 행정부의 집권을 한 달 앞두고 군사적 도발이라는 정치적 자본을 써버리는 것은 무모한 일이므로 북한이 당분간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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