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적폐 청산이냐, 탄핵 딜레마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로 정부의 핵심 정책이 ‘블랙아웃’(blackout·대정전)에 빠지면서 줄 폐기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정치권의 ‘포스트 정책 좌표’는 없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지키자’는 여당과 ‘뒤집자’는 야당의 사생결단식 대결만이 ‘포스트 탄핵 정국’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 분당 위기에 처한 여당은 사실상 리더십의 구심점을 잃은 상태다. 야당은 박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적 탄핵’을 넘어 ‘정책 탄핵’으로 반대 전선 넓히기에만 골몰하는 모양새다. 총론에만 공감대를 형성한 여·야·정 협의체가 ‘탄핵 리스트’의 방파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경제의 화약고로 불이 옮겨붙는 진원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野 ‘국정교과서 폐기 1순위’…구심점 잃은 與
14일 여야에 따르면 ‘포스트 탄핵 정국’의 대표적인 갈등 고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 논란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성과연봉제 도입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등 크게 네 가지다.
이 중 야권의 박근혜 정부 적폐 청산 첫 표적은 ‘친일·독재 미화’ 논란에 휩싸인 ‘역사교과서 폐기’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일순위 과제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최순실 교과서’로 불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에 찬성한다. 이 지점이 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 절차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책의 갈등은 민생법안으로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상법·하도급법 개정안’ 등 경제민주화 법안 8개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주택임대차보호법’ 등 서민경제 법안 8개 법안을 중점 법안으로 택했다. 국민의당은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세분화를 통한 맞춤형 차등규제 적용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우선 법안으로 지정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 4년차까지 추진했던 이른바 ‘규제프리존’(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비롯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정진석 전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 사퇴로 법안 협상자도 없는 상황이다.
◆ 외환위기·가계부채·구조조정 3대 난제 ‘어쩌나’
문제는 ‘탄핵 리스크’다. 남북관계 불안 요인과 노동시장 경직성과 유연성의 갈등 등 대내적 악재는 여전하다. 금리 인상이 초읽기에 들어간 미국의 ‘머니 무브’(money move·자금 대이동)는 현실화될 조짐이다.
저성장에 직면한 신흥국의 외채 증가에 따른 디폴트(default·채무 불이행) 위기도 전 세계를 덮치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도 여·야·정 협의체의 순항은 난망한 상황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여·야·정 협의체는) 당분간 어렵다”고 말했다. 협의체 참여 범위 등 각론을 둘러싼 갈등 탓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탄핵 리스크’ 관리에 실패할 경우 외환보유액 등 외환관리를 비롯해 가계부채, 산업 구조조정 등이 ‘트리플 세트’로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3600억 달러가량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26%에 불과하다. 이는 대만(80.5%)과 중국(33.9%) 등보다 낮은 수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번째 문제는 인위적인 부동산 경기부양으로 촉발한 가계부채 문제로, 금리 인상 시 약 140만에 달하는 한계가구가 이자 상환 부담 가중에 따른 파산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조선·해운 산업의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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