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관련 주제는 권력투쟁적 접근법으로 이야기하는 게 제일 재미있다. 좌파, 우파, 친박, 비박, 상하이방, 태자당, 공청단......, 이들이 펼치는 무한 다큐멘터리 드라마는 「삼국지』 보다도 현장감과 박진감이 넘친다. 단, 이 방법은 킬타임용으로는 제격이나 실익이 없다.
반면에 제도적 접근법을 통한 중국이야기는 유익하지만 재미가 없다. 재미있고 유익한 일석이조의 이야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래 소개하는 두 경험담은 이런 고민 끝에 우러나온 것인데 시식을 한 번 해 보시도록.
◇ 한국에 IMF 구제금융 한파가 급습한 1997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당시 상하이 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로 근무하고 있던 필자는 저장성 자싱(嘉興)시 경제개발구 왕모 주임의 초청으로 출장길에 나섰다. 왕 주임은 처음 본 나를 뜨겁게 포옹을 하며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곰발바닥 요리 등 산해진미를 총동원한, 이른바 ‘황제만찬’도 선사했다.
후식을 먹으며 필자가 처음 본 사람에게 왜 이토록 융숭한 대접을 하냐고 영문을 묻자, 그는 자기가 수석 부시장으로 일약 2계급 특진하게 되었다며 이는 모두 필자 덕분이라고 했다.
어리둥절해진 필자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하자 특진사유는 한국타이어의 9000만 달러를 비롯해 외자 유치에 탁월한 실적을 세운 것으로 이게 다 필자가 힘써준 덕분이라고 했다. 다음에 더 크게 쏘겠으니 자신이 시장이 되도록 더 큰 건으로 하나 부탁한다고도 했다. 솔직히 필자는 그 때 한국타이어가 자싱에 입주한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중국에서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의 출세는 외자를 얼마나 유치하였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각종 법률·법령뿐만 아니라 헌법조항(중국헌법 제18조 외자투자유치 장려조항)으로 제도화돼 있었다. 이는 중앙 정부 뿐만 아니라 각급 지방 당과 정부로 하여금 외자유치 경쟁에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게 했다.
아, 그랬구나! 왕 주임은 한국의 시스템도 중국과 비슷하다고 착각했고 필자가 한국타이어('한국'타이어가 국유기업인 줄 알았나보다)의 자싱 유치에 큰 역할을 했다고 여긴 것이었다.
◇ 2003년 4월 22일, 필자는 현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정치협상위원회 주석, 권력서열 4위, 위정성(兪正聲, 1945~ )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필자는 당시 정치국 위원 겸 후베이성 당서기였던 위정성으로부터 영양가가 쏠쏠한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 거상들의 본고장인 저장의 사오싱(紹興)에서 태어나 하얼빈군사공과대학을 나온 그가 승승장구의 관운을 펼친 곳은 산둥의 옌타이(煙臺)와 칭다오(靑島)다.
특히 칭다오에서만 부시장, 시장, 서기를 10년 가까이 맡으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업체의 3분의 1 가량을 유치하는 위업을 쌓았다. 그 덕분에 일개 지방도시의 수장에서 건설부 부장(장관 격)으로 승진했고, 다시 정치국 위원으로 초고속 출세가도를 걸었다.
산둥성, 특히 칭다오에 진출한 한국 기업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왔다고 수 차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뒤 덧붙인 당부의 한마디, 농담반 진담반(사실 농담 1, 진담 9)으로 던진 위정성의 그 한마디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앞으로는 칭다오보다 후베이에 더욱 많이 투자해주세요, 다음 방한에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서 올 수 있도록!”
마오쩌둥 이전 중국에서는 공산당 이념에 얼마나 충실한가의 당성과 출신성분이 공직자 인사고과에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덩샤오핑 개혁·개방 이후 실적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당중앙위원회 정위원 이상 최고핵심층 고위당정인사는 지방 수장을 맡게하고 그 중 실적이 탁월한 자로 충원해왔다.
중국 최고권력층,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서열 제1위인 시진핑은 푸젠, 저장성, 상하이시 당서기를, 2위 리커창은 허난성과 랴오닝성 당서기를, 3위 장더장은 랴오닝성과 저장성 당서기를 역임했다. 서열 5위 류윈산을 제외한 정치국 상무위원 6명은 2~3곳의 지방정부 수장을 거쳐왔다.
현재 중국의 공직자 인사 방식은 실적제에 해당한다. 중국의 인사행정은 미국식 민주선거에서 관직을 사냥하는 듯, 선거에 승리한 정당이 모든 관직을 전리품처럼 처분하는 엽관제가 아니다. 또, 인사권자의 개인적인 신임이나 혈연, 지연 등 연고 중심의 영국식 정실제도 아니다.
요컨대, 중국 질주의 비결은 슬로건이나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정책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해 강력히 실행하는데 있다. 법제에 관한한 중국이 괜한 G2가 아님을 알게 됐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