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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포스트 탄핵 정국의 핵심 어젠다(의제)는 '헌법개정'이다. 이미 필요성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다. 쟁점은 3가지로 압축된다. 언제, 어느 것을, 어떻게 하느냐다.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권력구조만 대상으로 한 '원포인트' 개헌과 국민기본권· 지방분권 등 다양한 의제를 포함한 대규모 개헌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방법에 따라 시기도 갈린다. '국민'이 주체가 되는 개헌이 돼야 한다는 원칙은 확고하다. 다만 그것이 정략적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한만큼 쟁점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관건이다.
◆ 권력구조·기본권·지방분권 등 범위 넓어
5선 중진의 이주영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개헌추진회의'는 15일 3차 회의를 열고 이달 안에 개헌 '단일안'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여권의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그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우윤근 사무총장 등을 섭외중"이라며 "여야를 넘나드는 개헌 공감대 형성을 주도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지난 18대와 19대 국회에서도 개헌은 연구 대상이었다. 20대 국회가 첫발을 뗀 지난 6월에도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원사를 통해 "개헌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며 "국회의장으로서 20대 국회가 변화된 시대,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헌정사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연구, 논의가 실제 '준비'작업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최순실 사태'는 한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됐다.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을 수 있는 권력구조 개편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독일식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이 거론되지만 아직까지 의견이 모아진 것은 없다.
권력구조 외에도 지방분권 강화, 인권신장 등을 담은 국민 기본권 및 경제헌법 조항 개편 등 87년 체제 이후 달라진 사회상을 반영해야 할 부분은 많다. 해묵은 체제 개편을 위해서는 대대적인 헌법 조항 수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 '시기'가 관건…정치권의 '정략적' 움직임 경계해야
결국은 추진 시기에 달렸다. 대통령 탄핵으로 대선 시계는 이미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선 전 개헌을 해야 한다는 입장과 차기 정부가 이를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 그래서 갈린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이날 '대선 전' 개헌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권력구조를 개헌을 통해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다 형성돼 있고, 오래전부터 국회에서 많은 준비를 했기 때문에 시간은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제3지대를 주장하는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 민주당의 김종인·김부겸 의원 등도 즉각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는 '개헌론자'다. 연대 가능성까지 내비치면서 '비패권지대'발 정계개편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대목이다.
초대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지낸 허영 경희대 로스쿨 석좌교수도 최근 세미나에서 정치권 합의가 어려운 점을 감안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대신 그는 차기 대통령이 1년 내 개헌안을 마련해 이에 따른다는 조항을 추가하자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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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차기 정부에서 차근차근 개헌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전날 "현재의 탄핵정국, 촛불정국을 벗어나서 우리사회가 좀 더 차분하게 개헌을 논의할 수 있는 시기에 개헌이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가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지난 87년 체제 수립 당시를 기준으로 개헌을 한다면 국회 표결과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인용하면 대선은 두 달 안에 치러야 한다. 만약 1월 안으로 결론이 나면 3월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그 때까지 개헌 논의가 마무리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장희 창원대 법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막연하게 대통령제를 손봐야 한다는 논의를 해 왔다면,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다시 확인되는 것들이 있다. 정당의 책임성 강화, 국정에 대한 통제 및 책임성 강화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칫 '득표'를 위한 수단으로 개헌이 활용될 수 있는 상황을 학계는 경계하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구체적 논의도 안 됐는데 '원포인트' 개헌을 하게 되면 지금보다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다"면서 "서두르지 말고 체제정비 후 많은 의견을 수렴해 개헌을 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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