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의 행복한 경제] 라 과르디아 이야기

  •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미국 뉴욕의 ‘라 과르디아’ 공항은 알아도 ‘피오렐로 라 과르디아’(Fiorello H. La Guardia, 1882-1947) 뉴욕시장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케네디(JFK)공항이 미국의 관문 역할을 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공항이라면, ‘라 과르디아 공항’(LGA)은 우리의 김포공항처럼 국내선 전용공항이다.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국내선 공항에 그의 이름을 붙였을까?

피오렐로 라 과르디아는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이다. 이탈리아어로 피오렐로는 ‘작은 꽃’이다. 그의 키는 채 160이 되지 않았지만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정도로 용감했다. 그는 공화당 정치인이었지만 대공황 시절 민주당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지지했다. 루스벨트와 힘을 합쳐 뉴욕시 경제를 다시 회복시키는데 성공했다. 대중교통을 통합하고 공공임대 주택을 공급했으며, 고속도로, 다리, 터널, 공항을 건설하고 시민을 위한 공원과 놀이시설도 확충했다. 집안 배경과 연줄을 통한 공무원 채용에서 벗어나 능력에 따른 공채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행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 그 결과 그 어려운 대공황 시절에 뉴욕시장을 3번이나 역임(1934-1945)했다.

대공황을 극복했던 훌륭한 뉴욕시장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기도 하지만, 그는 감동적인 판결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뉴욕대학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이기도 했다.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급증했던 1935년 겨울 그는 즉결사건을 다루는 야간법정의 1일 판사로 봉사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한 할머니가 절도혐의로 법정에 끌려왔다. 빵 한 덩이를 훔친 혐의로 기소되었다. 라 과르디아 시장이 그 노인에게 물었다. “전에도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처음입니다.” “왜 그런 일을 했습니까?” “죄송합니다, 판사님. 최근 직장을 잃었고 집에는 버림받은 딸과 두 손녀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런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판사는 잠시 후 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절도행위입니다. 법은 만민에게 평등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노인에게 10달러의 벌금 또는 10일의 구류를 선고하는 바입니다.”

라 과르디아 시장의 관용을 바랐던 장내는 술렁거렸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 노인의 절도행위는 이 노인만의 잘못이 아닌,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판결을 맡은 저 자신에게도 10달러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 모두도 50센트씩, 가능하다면 십시일반으로 이 벌금형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판사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판사는 자기 앞에 놓인 모자에 10달러를 넣은 다음 그 모자를 방청석으로 돌렸다. 잠시 후 판사는 거두어들인 돈에서 노인의 벌금 10달러를 빼고 남은 돈 47달러 50센트를 노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47달러 50센트를 쥐고 법정을 떠나는 할머니의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계속 흘러내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기립박수로 그 노인을 격려했다.

2016년 연말에 경제도 어수선하고 정치도 흉흉하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에 실망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경제에 절망한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30년 전으로 후퇴해버린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려는 5060 기성세대들 역시 광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니 탓이오’라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라 과르디아 시장의 판결처럼, ‘내 탓이오’, ‘우리 모두의 책임이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도시공동체와 국가공동체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도시와 국가의 문제를 발생시킨 책임이 작지 않다. 물론, 양비론이 문제의 초점을 흐릴 수 있고, 해법을 방해할 수도 있다. 동정론이나 온정주의의 폐해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2016년 11월과 12월의 광장을 가득 메운 수백만의 촛불이 한 단계 더 승화되길 바란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책임을 다하고, 공익을 생각하면서 사익을 양보할 줄 아는 건전한 시민들로 거듭나길 바란다. “시민은 자신의 고유한 자유를 중시하면서 (즉, 사익에 충실하면서) 자제와 양보를 통해 공익에 기여하는 존재”(송호근, [나는 시민인가], 2015)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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