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독일 베를린에서 크리스마스 시장을 덮친 트럭 테러의 용의자 추적은 지난 23일 이탈리아에서 경찰에 의해 사살되면서 일단락됐지만 정치적 혼란은 이제 시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튀지니 출신인 용의자 아니스 암리는 지난해 7월 독일에 입국해 1년 이상 독일에서 거주해왔다. 앞서 이탈리아에서는 학교 방화로 4년 가까이 수감됐고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모두 망명 신청을 거부당했다. 그는 요주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 감시망에서 배제되면서 당국의 무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특히 독일 경찰은 암리가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한 이슬람국가(IS)와 접촉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파이프 폭탄 제조 방법을 조사하고 자동 무기 획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했지만 사고를 예방하지 못해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내년 총선 승리를 통해 4연임을 목표로 하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높아진 반이민 정서에 직면해 이민 및 안보 정책의 변화를 신호했다.
메르켈은 23일 “암리 사건은 그 행위 자체뿐 아니라 그가 독일에 온 이후에 시간과 관련하여 일련의 질문을 제기한다”며 “우리는 이제 시급성을 인식하고 국가 정책의 변화 정도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거부된 망명 신청자들에 대해서는 서둘러 본국 송환을 실시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메르켈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기존에 이민과 안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던 것에서 융통성을 신호하는 것이다. 다만 난민 입국자수를 제한해서는 안된다거나 유럽 내 국경 개방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독일 당국이 안고 있는 신규 입국자에 대한 조사 과제는 상당하다. 11월 말 기준으로 암리의 고향인 튀니지에서만 무려 3만3000여명이 망명을 신청했다. 1500여명에 대해서는 본국 송환 명령이 내려졌지만 실제로 튀니지로 돌아간 이들은 111명에 그친다.
송환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튀니지가 자국민들 다시 받아들이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베지 카이드 에셉시 튀니지 대통령에게 공조를 요청했다며 송환 절차를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 야당은 메르켈 총리에 대한 공세를 한층 높이고 있다. 반이민 정서를 내세우는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의 카르슈텐 볼다이트 의원은 23일 이번 테러는 “국가의 실패”라며 “마치 시민의 보호가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비난했다.
한편 암리는 지난주 테러를 저지르고도 독일에서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까지 800km를 이동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럽 내 국경 폐쇄론도 거세게 불고 있다. 유럽의 반이민 포퓰리즘 정당들은 일제히 유럽 내 국경개방을 약속하는 솅겐조약의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당수는 23일 솅겐조약은 "완벽한 안보 재앙"이라며 폐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의 베페 그릴로 대표는 "이탈리아가 테러범의 경로가 되었다“며 ”국경통제를 강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스 당수 역시 트위터를 통해 “국경을 닫는 게 나쁜 아이디어인가"라며 국경 폐쇄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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