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후장대 2016 결산 ②해운] ‘집안싸움’에 초가삼간 다 태워…‘대마불사’ 한진해운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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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2-2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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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제177-2회 무보증사채 사채권자집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현대그룹 빌딩 로비가 취재진과 채권자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날 현대상선은 회사채 2400억원어치에 대해 사채권자집회를 열어 참석 채권자들의 동의로 채무 조정안을 의결했다.[남궁진웅 timeid@]

아주경제 김봉철·송종호 기자 = 해운업계에서 2016년 병신년(丙申年)은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한진해운이 몰락한 한 해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순위 10위인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

현재 한진해운은 사실상 청산 수순을 밟고 있고, 홀로 남은 국내 유일한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은 여전히 경영정상화를 위한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 정부 오판으로 ‘집안싸움’…해운업 재편 기회 놓쳐

해운업은 베이징올림픽이 열렸던 2008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하향세를 보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양사간 합병 등 경쟁력 제고 방안을 마련했어야 했지만, 기업들의 ‘버텨보자’는 논리를 정부가 꺾을 수는 없었다.

기업 입장에서도 서로 자신들 회사로의 합병을 원했기 때문에 평행선을 달렸다.

결국 올해 4·13 총선 참패 이후 정부가 조선업에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걸면서 해운업은 조선업과 함께 ‘구조조정 패키지’로 묶였다.

조선업과 달리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닌 해운업에 대한 정부의 논리는 놀라울만큼 단순했다. 정부는 ‘합병이 어렵다면 한 곳을 없애자. 그러면 나머지 한 곳이 남은 물동량을 흡수하면 된다’였다.

그 결과, 채권단 자율협약이라는 명목 하에 경쟁력 있는 한 곳을 선정하기 위한 ‘집안싸움’이 시작됐다.

반대로 글로벌 해운업계는 재편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7월 말 독일 하파크로이드와 중동 UASC가 합병 계약을 맺었으며, 이달 초 세계 1위 덴마크 머스크는 업계 7위인 독일 함부르크쥐트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가까운 일본도 3대 해운사(NYK·MOL·K라인)가 컨테이너부문을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의 구조조정과 묶이기 전에 늦어도 2014년에는 국내 해운업도 재편 논의가 있었어야 했다”면서 “서로 괜찮다고 버티다가 초가삼간을 태우고 다 죽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 홀로 남은 현대상선 미래도 불투명…회생 위해 안간힘

정부의 안일한 대처는 막대한 피해로 이어졌다. 글로벌 기업들이 회생을 위한 몸부림을 칠 때 정부와 채권단은 한진그룹과 자금 수혈을 놓고 ‘치킨게임’을 벌였다.

법정관리가 시작되자마자 한진해운 전체 선박(141척)의 31%(44척)가량이 바다 한 가운데 멈춰섰다. ‘큰 말(기업)은 죽이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공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정부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피해는 뼈아프게 다가왔다. 현대상선이 흡수했을 것으로 예상됐던 한진해운의 물동량은 고스란히 해외선사들에게 돌아갔다.

국내 해운업 구조조정은 대실패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 됐다. 사후 대처도 미흡했다. 금방 수습된다던 물류대란은 9월부터 3개월째 이어졌고, 직·간접적인 피해액만 해도 20조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진해운이라는 국적 선사가 사라지자, 바닥을 찍던 운임이 폭등했다.

집안싸움의 승자가 된 현대상선의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한때 시가총액 1위였던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회생 과정에서 알짜 자회사인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등을 모두 매각해 자산 2조원대의 중견그룹으로 전락했다. 현대상선도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전에는 세계 13위의 선사였다.

현대상선을 한진해운의 대체선사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계획도 양대 국적선사의 한 축이 무너지자, 힘을 잃었다.

한진해운의 우량자산 중 미주 노선은 SM그룹의 자회사인 대한해운이 인수했으며, 미국 롱비치터미널도 현대상선이 소수 지분만 갖는 형태로 인수가 추진되고 있다.

2M 가입 협상에서 동등한 지위가 아니라 낮은 수준의 ‘전략적 협력관계’으로 결론이 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대상선은 20일 함부르크 수드, 하파크로이드, UASC, NYK, ZIM 등 글로벌 주요 5개 선사와 함께 ‘극동-남미동안 서비스’를 재편하는 등 회생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앞으로도 경쟁력 강화를 통해 물동량을 높이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항로 재편 등 경쟁력 있는 서비스 개발에 집중할 방침”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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