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자체의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경제정책을 총괄적으로 구상하고 집행할 ‘경제통’도 필요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트레버 마누엘 장관은 20년간 재무장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컨트롤타워가 ‘1년 장관’이라는 점에 비하면 시장의 무한신뢰를 받고 있는 셈이다.
특히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의 과감한 경제정책으로 이를 극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시장의 전폭적 지지가 중요하다는 것도 공통분모다.
상황에 맞는 경제정책이 얼마나 ‘골든타임’을 필요로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잃어버린 20년’으로 장기불황에서 허덕이고 있지만, 1930년대 말 닥친 금융공황을 극복한 전력도 있다.
미국은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중앙은행 제도의 기초를 정립해 경제국가의 초석을 다지며 여전히 G2 국가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해밀턴의 중앙은행 제도는 지금까지 주요 국가에서 채택하는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해밀턴의 ‘과도하지 않은 국가 부채는 축복이다’라는 말은 경제정책이 얼마나 시기에 맞춰 집행해야 하는지를 의미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확장적으로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국내 경제전문가들의 조언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이 성장하는데도 경제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당시 재무장관들은 경제대통령들의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하며 국가성장의 한 축을 맡았다.
혁명투사에서 시장이 신뢰하는 정책결정자로 탈바꿈하며 20년 가까이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제를 맡고 있는 트레버 마누엘은 입지전적이다.
당시 대통령이던 넬슨 만델라는 경제, 재무분야 전문가도 아닌 혁명투사 출신인 마누엘을 재무장관으로 내정했다. 초기에 좌파성향이 강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우파적인 자유화 정책을 펼쳐 시장에 충격을 줬다.
그는 수출보조금을 축소하는 등의 정책을 내놨다. 그리고 불투명하고 복잡했던 각종 관세 제도 개혁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수출 기업들 경쟁력을 키우는데 성과를 거뒀다.
또 백인에서 흑인으로 부의 재분배를 위해 기업을 중심으로 일정 비율의 지분을 흑인에게 유상 양도하는 ‘흑인경제 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마누엘은 이같은 정책집행으로 2001년까지 이자 비용을 제외한 예산이 4%가량 실질적으로 증가했고, 감세 조치로 인해 재정 적자 수준이 GDP의 2% 대로 낮아졌다. 이밖에 3%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는데, 이는 1996년 이래로 가장 높은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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