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이 두미종합개발을 400억원에 샀지만, 인수 당시를 보면 장부상 납입자본금이 30억원밖에 안 됐다. 이에 비해 부채총계는 1800억원을 넘었다. 세 형제가 빚더미뿐인 회사를 수백억원에 넘긴 셈이다. 결국 효성은 올해를 나흘 남긴 27일 두미종합개발을 1대 0 비율로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인 효성그룹 대표회사 효성은 직접 골프장까지 운영하게 됐다. 새해부터 두미종합개발이 부실한 재무제표를 따로 내놓지 않아도 되는 것은 덤이다. 효성은 기자에게 두미종합개발보다 자사 이름으로 골프장 회원권을 파는 게 유리해서라고 해명했다. 수많은 소액주주가 있는 상장사 효성이 이래도 되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로 부를 불려 자식에 넘기는 재벌 때문에 상법과 상속ㆍ증여세법, 공정거래법을 고쳤다. 상법은 2011년 회사 기회와 자산 유용 금지 조항을 새로 담았다. 같은 해 상증세법에는 일감 몰아주기로 번 돈에 대해 상속이나 증여에 준해 세금을 물리는 조항이 만들어졌다. 2013년에는 공정거래법을 바꿔 재벌 총수 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가 금지됐다.
그러나 허점은 여전하다. 국내 대기업집단 총수가 계열사 자산이나 기회를 유용해 번 것으로 의심되는 돈은 천문학적인 규모다. 물론 가장 심각한 것은 최상위 재벌이다. 경제개혁연대가 이달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삼성ㆍ현대차ㆍSK그룹을 비롯한 10대 재벌(포스코ㆍ현대중공업그룹 제외) 총수 일가는 2015년 말까지 31개 계열사를 만들면서 4756억원을 출자했다. 이에 비해 일감 몰아주기 같은 방법으로 불린 돈은 애초 출자액보다 5512% 많은 26조2128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1위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60억원을 투자해 이보다 6만8239% 많은 4조952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액수로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1위다. 계열사 자산이나 기회를 손상시켜 불린 돈이 7조3490억원에 달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어떤 법도 완벽할 수는 없다. 총수 일가가 주식을 30%(상장사) 또는 20%(비상장사) 이상 가진 회사로 내부거래 규제 대상을 정하니, 재벌은 지분을 29%나 19%로 줄인다. 이처럼 재벌은 앞으로도 허점을 노릴 것이다. 그렇더라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억제할 수 있는 장치도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상장사나 비상장사 가릴 것 없이 총수 일가 지분이 20%를 넘으면 규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 회사가 거느린 자회사나 손자회사도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어, 연결재무 기준으로 규제하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일감 몰아주기로 키운 SK C&C를 상장해 7만%에 맞먹는 수익을 낸 것도 문제 삼는다. 상장 차익에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가 정신마저 꺾는 정책은 곤란하다. 박근혜 정부 이후 들어설 새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 대다수 국민은 현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권이 어떻게 부패했고, 재벌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잘 안다. 심지어 삼성그룹은 삼성물산ㆍ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국민연금을 동원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이번 대선에 나올 후보가 내놓을 공약 가운데 재벌 정책에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재벌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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