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동네병원을 난임치료 최고 병원으로 키웠다. 차 회장은 1985년 서울대병원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시험관 아기 시술에 성공했다. 동시에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 사이 서울 중구에 있던 작은 병원이던 차산부인과는 강남구 역삼동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등에 대형병원을 두고, 의과대학과 바이오회사까지 갖춘 대형 의료그룹으로 성장했다. 차 회장은 의학 연구에는 아낌없이 투자하지만 골프나 사치와는 거리가 먼 최고경영자(CEO)이자 연구자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차 회장이 '박근혜·최순실 부역자'라는 의혹이 나왔다.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차 회장은 출장을 핑계로 미국으로 도피했다.
차 회장이 맞춤형 건강관리와 외국인 환자 유치를 내세우며 세운 '차움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가명 처방과 대리 처방을 일삼았다.
차움은 2011∼2014년 최씨와 최씨 언니인 최순득씨 이름으로 박 대통령의 주사제를 처방했다. 최씨 자매의 진료기록부에는 박 대통령을 의미하는 '박대표', '대표님', 안가', 'VIP', '청'이라는 단어가 29차례나 쓰여 있었다.
진료비 대납도 가볍게 눈감아줬다. 최씨 자매가 박 대통령 취임 전후로 113만원 상당의 대리 처방비를 대납한 것이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확인됐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차 회장은 산모들이 연구를 위해 차병원에 기증한 제대혈(탯줄혈액)을 제멋대로 사용했다. 연구용도 아닌 자신과 가족의 미용이나 보양을 위해서였다. 태아 탯줄에서 나온 혈액인 제대혈은 세포의 성장·재생에 관여하는 줄기세포가 풍부해 일부에서 미용용으로 쓰인다.
복지부 조사 결과 차 회장은 본인이 3회, 부인인 김혜숙씨가 2회, 원로 산부인과 의사이자 부친인 차경섭 차병원그룹 명예이사장이 4회 등 일가족이 아홉 차례 걸쳐 연구목적의 제대혈을 불법 시술받았다.
현행법상 제대혈 시술을 받으려면 임상시험 연구 대상자로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차 회장과 부인 김씨, 차 명예이사장은 연구 대상이 아니면서도 시술을 일삼았다. 여기에 본인의 동생과 동생 남편, 사돈 등 친인척 8명을 연구 대상자로 끼워 넣어 시술을 받게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룹 내 자회사를 통해서는 면역세포(자연살해세포)치료제를 불법 배양해 맞아왔다. 자연살해(NK)세포는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균이나 바이러스 등을 공격하는 면역세포 중 하나로, 암 치료 등에 쓰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 결과 차 회장은 차바이오텍을 통해 자신과 부인, 딸의 혈액을 채취하게 한 뒤 이 혈액에서 세포를 분리·배양해 치료제로 만들게 했다. 이렇게 만든 면역세포치료제를 총 19차례에 걸쳐 그룹 계열병원인 분당차병원에서 투여받았다.
국내법은 병원이 환자의 혈액에서 면역세포를 분리·투여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지만, 채취한 세포를 배양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차 회장의 불법행위를 바라보는 의료계 시선은 싸늘하다. 의사 대표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8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차 회장과 차 명예이사장을 협회 중앙윤리위원회 심의에 회부하기로 했다. 연구가 아닌 사적인 이익을 위해 제대혈 주사를 불법으로 맞은 행위는 의사로서 지켜야 할 윤리를 저버린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국민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산부인과 신화'로 불렸던 차 회장은 이제 권력의 부역자이자 사리사욕에 눈먼 탐욕스런 의사로만 비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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