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 개봉한 영화 ‘여교사’(감독 김태용·제작 (주)외유내강 ·공동제작 Film K·제공 배급 필라멘트픽쳐스)는 일상적인 계급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계약직 여교사 효주(김하늘 분)는 정교사 자리를 치고 들어온 이사장 딸 혜영(유인영 분)과 눈여겨보던 남학생 재하(이원근 분)과의 관계를 알게 되고 그를 이길 수 있는 패를 쥐었다는 생각에 다 가진 혜영에게서 단 하나의 것을 빼앗으려 노력한다.
이번 작품에서 배우 유인영(33)은 이사장의 딸 혜영을 연기했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효주가 원하는 것들을 간단히 성취할 수 있는 혜영은 이 영화에서 악역을 도맡았지만 따지고 들자면 효주가 저지른 일이라고는 배려와 관심, 그리고 순진한 발상이 전부였다.
천진하고 상냥한 혜영이 악역이라 불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유인영은 시사회를 통해 비로소 객관적으로 작품에 다가갈 수 있었다. 30대 여성 관객으로 혜영과 효주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또 다른 공감할 수 있었다.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연기할 땐 정말 몰랐거든요. 편집이나 음악이 삽입되고 나니 시나리오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시나리오 따로, 영화 따로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어요. 새롭고 신선했죠.”
부족할 것 없이 자라 언제나 밝고 싱그러운 여자. 친절하고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상대의 편의를 배려하는 악의를 배제하고 건강한 선의를 가진 혜영은, 유인영에겐 “닮고 싶은 사람 ”이기도 했다.
“제가 보기엔 세고, 차가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성적이고 소심하거든요. 남에게 피해 주기도, 받기도 싫어하는데 혜영의 단순한 면모들? 그 성격이 부러웠어요. 눈 앞에 펼쳐진 현실에 과감하기도 하잖아요. 제겐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부러운 마음이 컸어요. ‘닮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실제 성격과 캐릭터 사이의 괴리감은 배우 유인영을 괴롭게 만들지 않았을까? 유인영에게 캐릭터와 실제 모습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물었다.
“제 안에 있는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려고 했어요. 초반 혜영의 모습은 제가 친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과 비슷해요. 다른 작품들에서는 이런 모습을 꺼낸 적이 없어서 약간 낯설긴 했어요. 그 어색함을 이겨내고 제 밝은 면모들을 초반 혜영에게 대입하려고 했죠.”
그렇게 시나브로 혜영과 유인영의 거리가 좁혀졌다. 이윽고 완벽하게 혜영에게 일체 하게 되었을 땐, 알 수 없는 쾌감이 유인영을 사로잡았다.
“화학실 신의 경우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처지가 바뀌거든요. 처음에는 혜영이 효주에게 애원하고 나중에는 효주가 혜영에게 애원하죠. 그 장면을 찍을 때 ‘넌 발버둥 쳐도 안 돼’하는 생각이 들면서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고요. 그 신을 찍을 때 약간 놀랐어요. 아, 혜영에게 완전히 몰입했구나 싶었죠.”
그의 필모그래피를 돌이켜 봤을 때 유인영은 늘 차갑고 도도한 성격을 가진 평범한 악역이었다. 으레 악역이라면 저질러야 할 일들이 있고, 가져야 할 태도가 있었으므로 유인영에게 혜영은 악역이라기엔 다소 빈약했고 낯설기도 했다.
“색다른 느낌을 연기하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어요. 감독님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고 배역에 대해 애정도 깊었죠. 타협하고 싶지 않은 역할이었어요. 이번 영화를 하면서 느낀 게 제가 감정적인 부분들을 극대화 시키는 것에 익숙했다는 것이었어요. 기존 드라마에서 해오던 것들이 있으니 사건이 터지고 감정을 극대화 시켜서 쏟아내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 거예요.”
감정신을 연기하고 나면 늘 김태용 감독에게 “모자라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 늘 해왔던 감정신보다 느리고 잔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태용 감독은 “그럴 필요 없다.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고, 유인영을 설득했고 그제야 “확대하는 것만이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어떤 감정의 정점을 찍고 그걸 크게 확대해야지만 잘 보이는 건 아니었는데. 잔잔한 감정들이 점층적으로 쌓여간다는 걸 왜 잊고 지냈을까 싶더라고요. 김태용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차 싶었던 것들이 있었어요. 내가 너무 감정을 단편적으로 극대화 시키려고 했구나, 그렇지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지 하고요. 이번 작품으로 연기적인 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점점 더 자연스럽고, 융융해진 자신의 모습. 유인영은 스크린 속 혜영을 보고 “내가 가진 본 모습이 조금씩은 보이는 것” 같아 신기했다. 유인영의 진짜 표정들을 “매체에서 보여줄 기회”가 없었으니까.
“(김) 하늘 선배님과의 호흡은 정말 놀라웠어요. 저는 제 연기를 모니터로 보는 것도 어색하고 힘든데 선배님은 정말 객관적으로 모니터하시더라고요. 마치 다른 사람의 연기를 보는 것처럼요. 아, 나도 능력이 쌓이면 선배님처럼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효주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혜영처럼. 유인영 역시 김하늘에 대한 존경과 애정으로 그득했다. 섬세하고 예민한 효주의 감정들을 마주할 때마다 “진짜 혜영이 되는 것” 같았다. “효주가 어떻게 대사를 하고,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혜영은 그때그때 바뀌었”고, 자신도 모르던 혜영의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냈다.
“분석하고 고민하는 것도 많았지만 효주로 인해 혜영이 완성되는 것 같았어요. 만들어지지 않은 부분들이 (김하늘) 선배님에 의해서 변형되곤 했거든요. 김하늘이라는 배우의 것을 받았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분이 있었어요.”
인터뷰 내내 유인영은 ‘여교사’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곤 했다. 자신의 다른 면면을 꺼낼 수 있었고, 연기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고마움이었다. 거기에 드물었던 ‘여성 영화’의 반등 기회기도 하니 작품에 대한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여성들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품이 드물잖아요. 이런 영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어요. 그야말로 행운이죠. 정말 행운 같았어요. 남성 위주의 영화가 흥행하다 보니까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 시나리오는 흔치 않기도 하고…. 우리 영화가 잘 돼서 좋은 여성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물론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어요. 다만 기회를 만들 수 있길 바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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