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연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중국 정부도 미국 기업들의 반독점 위반이나 세금 회피 문제 등을 조사하겠다며 강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따라서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대로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워 정책을 펼칠 경우 양국간 환율전쟁은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오는 20일 트럼프 행정부가 공식 출범한 이후 미국과 중국간 갈등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대강 대치가 심화되면서 치킨게임을 벌이게 될지, 아니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상에 나설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특히 최근 미국과 중국 양국 사이에서 '제2의 플라자합의'가 나올 것이란 관측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플라자합의는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등 G5(주요 5개국) 재무장관들이 모여 달러화 강세를 전환시키기 위해 합의한 조치를 말한다.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개인 소득세는 대폭 삭감하고 재정지출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이같은 재정정책은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로 이어졌다. 이후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가 더욱 확대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에 미국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환율 하락)을 유도해 달러 강세 현상을 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합의에 따라 독일과 일본은 평가절상에 나섰고 독일 마르크화는 1주 만에 달러화 대비 7%, 엔화는 8.3% 각각 올랐다. 이후 2년 동안 달러 가치는 30% 이상 급락했다.
이로 인해 미국 제조업체들은 달러화 약세로 높아진 가격경쟁력으로 1990년대 들어 호황을 누렸다. 반면 일본은 엔고로 인해 자산시장의 거품이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을 경험하게 됐다.
신성환 원장은 "플라자합의가 있던 당시와 지금 미국의 경제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면서 "미국 무역적자가 계속되면 G20(주요 20개국) 같은 국제 협의체를 통해 비슷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동민 교보증권 연구원도 "미국 경제의 강한 회복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는 트럼프가 달러화 강세를 용인할 리 없다"면서 "1985년 플라자합의에서 달러화에 대한 평가절상 요구 대상국가가 일본이었다면 2017년 트럼프가 주로 달러화에 대한 평가절상을 요구할 대상은 중국이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이 실제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보다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하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트럼프 당선인의 중국 관련 발언은 사실상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것보다 시진핑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면서 "중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수입을 중단하는 것으로 미국 제조업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정 연구원은 "트럼프가 가장 원하는 것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완화를 통한 경기개선이다"며 "보호무역주의, 중국의 사장경제지위 지정 보류, '하나의 중국' 원칙 파기 등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리한 조건을 얻기 위한 전략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인터뷰에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대선 공약과 관련해선 "취임 날부터 이러한 조처를 하진 않을 것"이라며 "중국과 먼저 대화하겠다"고 밝혀 협상의 여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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