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패권의 재건’을 외치며 백악관에 입성했다. 선거 캠페인부터 취임 일성까지 초지일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그를 두고 철학은 부재하고 목표만 존재한다는 비난도 나온다. 그에 따라 한국을 둘러싼 정치 경제적 환경 들이 급변할 것이다. 다행인 것은 트럼프가 사상 유례 없는 선명성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란 점이다. 오히려 예측이 쉽고 그에 따른 시나리오 경영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국가건 기업이건 말이다.
패권이란 간단히 말해 힘이다. 자국의 이익에 맞게 세계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권력을 뜻한다. 미국이 지닌 패권은 달러와 오일, 그리고 핵 등 세가지 요소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미국은 패권국가의 애드벌룬을 띄웠다. 달러는 영국 파운드화를 무대의 뒤안길로 보내고 기축통화 자리를 꿰찼고 히로시마를 재로 만든 핵의 위력에 세계는 공포에 잠겼다. 달러를 통해 오일시장의 수급을 막후에서 조종한 미국은 세계경제란 드라마의 막강한 연출자로 거대한 수익을 챙겼다.
‘빼앗긴 일자리를 찾겠다’는 구호로 미국 패권의 실체를 교묘히 포장했지만 트럼프가 외치는 아메리카 퍼스트도 결국 달러와 오일, 핵이란 세가지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트럼프 당선 후 재건된 미국을 기대하며 달러가 강세 추이를 보였다. 하지만 강달러는 아메리카 퍼스트의 최종 목표지 길목에서의 전략은 이와 반대다. 내수 진작을 위한 재정지출은 달러 약세 요인이며,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서도 단기적으로는 약달러 정책이 필요하다.
트럼프도 재임초기 인위적인 약달러 정책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 경제부총리와 산업계는 원화와 중국 위앤화의 강세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트럼프가 지난 16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작정한 듯 “달러가 너무 강하다”고 발언한 것도 중국과의 무역수지 개선을 염두해둔 결과다.
달러로만 결재하는 원유는 달러가치와 반대로 움직인다. 약달러는 유가 상승과 동의어다. 최근 강달러 추이에도 불구,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등 수급 요인으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에 안착하는 등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란 변수로 달러가 약세 추세로 전환될 경우 유가 상승 기조는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유가에 민감한 정유·해운·건설 업계는 배 띄울 준비를 이미 마쳤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팀은 4%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분간 '약달러-유가상승'이란 두 개의 축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국내외 기업의 미국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강달러가 필요하지만 이는 보복관세란 무기로 대체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은 유가상승으로 오일달러가 늘어나면 마땅한 대체 투자처가 없어 미국내 인프라나 국채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나이는 100살 가까이 됐다. 역사상 한 세기를 넘긴 기축통화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달러의 수명이 거의 다 됐다는 의미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이런 점에서 경제사의 거대한 물결을 되돌리려는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패권말기의 발악이며 죽기직전 호랑이의 마지막 포효다.
역사상 평화적인 패권 이양은 없었다. 패권을 쥔 자가 순순히 권력을 놓아줄 리 없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2인자가 감이 떨어지길 마냥 기다릴 리 만무하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이 경제전쟁에서 무력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
트럼프가 외치는 핵전력 강화는 패권다툼의 최종 단계를 대비한 포석이다. 김정은의 북핵은 트럼프의 행보에 상당히 유용한 구실이다. 중국과 북한에 대한 핵억제력을 동시에 강화한다는 트럼프의 구상에 김정은은 마치 모의라도 한 듯 장단을 맞춰주고 있는 셈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THAAD)가 우리의 자위력 강화차원이란 명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트럼프의 입장에서 사드가 보조장단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