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시린 2월 초, 제주로 가자. 2월의 제주는 연중 관광객으로 북적이다 잠시 숨을 고르는 시기다. 바꿔 생각해보면 2월이야말로 제주의 한가로움을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수려한 풍광, 여기에 볼거리 즐길 거리, 그리고 먹거리까지 넘쳐 나는 이곳, 제주에서의 여행은 삶의 재충전을 위한 든든한 조력자가 아닐까.
◆겨울꽃 매화, 눈 덮인 돌담…그리고 밝게 빛나는 제주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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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강직하게 꽃을 피우는 매화[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겨울의 끝자락, 꽃을 배경으로 한 인생샷을 남기고 은은한 향기도 만끽하고 싶다면 매화가 정답이다.
특히 문인들과 화가들이 좋아했다. 선비들은 매화가 지닌 강직함처럼 지조와 절개를 드러내기 위해서 매화를 자주 그렸다.
제주의 2월은 통통 터져 하얀 속살을 드러낸 팝콘처럼 소담하게 피어난 매화축제로 들썩인다. 휴애리와 노리매, 한림공원에서는 매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돼 있다.
어디 매화뿐이겠는가. 까만 현무암 돌담 위로 침묵한 채 내려앉은 눈을 본 사람은 아마도 제주의 겨울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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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빚어낸 한 폭의 수묵화를 감상할 수 있는 겨울 제주의 눈 덮인 돌담[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밭을 따라 길게 펼쳐진 밭담 위의 눈, 자연이 선사하는 수묵화를 가만히 바라보자. 세상의 모든 소음을 흡수할 것처럼 단순한 흑백의 조화는 평안 그 자체다.
바당밭(해녀들이 마음대로 물질을 할 수 있는 바다)으로, 빌레왓(돌밭)으로 삶의 걸음을 재촉해야 했던 김녕·월정 지역 주민들의 삶을 마주하면 이 겨울이 주는 평안함이 왜 그리 달콤 쌉쌀한지 조금은 알 수 있을 듯하다.
길과 마을에 따라 펼쳐지고 이어지는 풍경을 보며, 또 지질트레일을 따라 걸으며 척박한 땅을 일구고 살아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기에 가장 좋은 계절, 아마도 겨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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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어두운 겨울밤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빛의 축제 루미나리에가 제주 허브동산에서 펼쳐진다.[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낮이 순백과 흑백의 아름다운 조화였다면 밤에는 빛의 축제 루미나리에가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2만여평의 제주 허브동산은 300만개의 빛으로 꾸며져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한다.
핑크돼지, 백호, 소망나무 등 조형물들도 앙증맞을 뿐 아니라, 건물 전체가 움직이는 듯한 연출로 신기함을 자아내는 미디어파사드도 볼거리다.
◆제주의 오름에서 생명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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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 정상에서 본 조각보 모양의 밭[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모든 땅이 죽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겨울, 땅 위로 봉긋이 솟은 주황색 당근을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생명이자 기쁨을 주는 땅의 선물이다.
구좌읍에 있는 말미오름 정상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조각조각 누벼진 보자기 같은 초록빛 밭 중간에 주황색 물감이 뿌려진 듯 당근이 솟아오른 모습이 신기하고 찬란하다.
두산봉이라고도 불리는 말미오름은 올레길 1코스의 하이라이트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우도를 바라볼 수 있는 지미봉과 마주하고 있다. 오름은 높지 않아 오르내리는데 3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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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 중문 시내와 바다, 한라산이 한눈에 펼쳐지는 군산오름[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군산오름도 겨울 여행지로 좋다.
어느 때보다도 더 빛나는 한라산의 겨울 풍경과 서귀포 앞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산방산, 중문 시내와 바다, 한라산을 모두 볼 수 있고 사방을 둘러보며 제주 전체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어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이곳에 오른다.
특히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오름이라는 점에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얼음새꽃을 품은 겨울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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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로 알려진 작고 단아한 노란 '얼음새꽃'[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신성한 숲’ 혹은 ‘실 따위를 흩어지지 않게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라는 뜻의 사려니 숲길을 거닐면 상쾌한 삼나무 향에 포개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황폐화되기 시작한 산림도로를 활성화하기 위해 사람이 다니는 길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제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길이 됐다.
해발 500~600m에 평탄하게 이어지는 산책길을 따라가며 만나는 얼음새꽃은 2월에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신들의 고향 제주에서 다양한 축제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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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입춘굿이 펼쳐지는 제주 [사진=제주관광공사 제공]
제주의 2월(음력 1월)은 마을마다 시작되는 굿으로 분주하다. 새해 첫 ‘신년과세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1만8000명 신의 고향답게 제주에는 풍부한 무속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무속이 바로 '굿'이다.
제주에는 마을마다 신들이 거처하는 장소인 당(堂)이 있으며 이곳은 마을을 수호하고 모든 일을 관장하는 신을 모신 성소이자 제사 장소다.
이 중 신들의 고향으로 알려진 송당에서 소천국과 금백주가 혼인하여 아들 18명, 딸 28명, 손자들을 낳았고, 이들이 제주도의 각 마을에 흩어져 각각 본향당신이 됐다고 한다.
새해가 되면 '신년과세제'를 드리는데 이 제사는 다른 제사 때보다 규모가 아주 크다.
송당본향당에서는 음력 1월 13일(2월 9일)에, 와흘본향당에서는 음력 1월 14일(2월 10일)에 각각 대제를 지낸다.
와흘본향당은 출입이 제한돼 있지만 당제가 열릴 때 한해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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