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불출마 택한 반기문, "보수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 대통령 자격 없어"

"보수 소모품 되라는 얘기, 받을 수 없어"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의사를 밝힌 뒤 국회를 나서고 있다.[남궁진웅 기자, [e-mail]]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은 1일 "보수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면서 "나는 보수이지만 그런 이야기는 내 양심상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반 전 총장 측에 따르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그는 마포구 사무실을 찾아 참모들에게 "정치인이면 진영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하더라"라며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여기서 그는 "정치인들의 눈에서 사람을 미워하는 게 보이고 자꾸만 사람을 가르려고 하더라"면서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쪽이라고 확실하게 말하라는 요청을 너무나 많이 들었는데, 말하자면 보수의 소모품이 되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또 반 전 총장은 "순수하고 소박한 뜻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너무 순수했던 것 같다"면서 "정치인들은 단 한 사람도 마음을 비우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더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는 꾼에게 맡기라고도 하고, 당신은 꾼이 아닌데 왜 왔느냐고 하더라"면서 "정치가 정말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자신을 도운 참모들에게는 "오늘 새벽에 일어나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발표문을 만들었다"면서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여러분과 미리 상의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 아마 한 사람이라도 상의를 했다면 뜯어말렸을 것이 분명한데 한 발 더 디디면 헤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반 전 총장은 "제일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게 여러분과 거리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라며 "(그분들의) 따뜻한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좌절하면서도 그 분들 때문에 버틴 것인데 이 분들에게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이날 참모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 도와준 인사들에게 감사의 전화를 했다고 반 전 총장 측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