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시민들을 맞이한 것은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구체제였다. 설 연휴 직전 탄핵을 당해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은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게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거짓으로 쌓아올린 거대한 산’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지난해 10월 한겨레신문을 시작으로 JTBC의 태블릿 PC 폭로로 최순실 게이트라는 빙산의 일각이 드러나고,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사과를 3차례나 했다. 대국민사과에도 불구하고 촛불민심을 들끓었고, 국회가 지난해 12월 9일 탄핵소추안을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가결시켰다. 불과 두 달 전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와 청문회에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았던 구중궁궐의 암투가 실시간으로 TV중계를 탔다. 21세기 한국에서. 왕조국가에서 벗어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시계는 왕조시대에 멈춰져 있음을 시민들은 알고 분노하고 허탈감에 빠졌다.
박영수 특검팀이 가동돼 블랙리스트,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등 검찰이 다루지 못했던 최순실 게이트를 조사하면서 언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검찰에 의해 발견된 국정농단은 조족지혈(鳥足之血) 즉 새발의 피였다. 숱한 의혹들이 봇물 터져 나오듯이 언론을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에 착수하고, 대통령 대리인단이 방어에 본격 나서기 시작하면서 촛불집회에 맞선 맞불집회는 태극기집회로 이름을 바꿨다.
4개월 혹은 5개월에 걸쳐 한국 사회는 마치 거대한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이 불거졌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속에서 시민들은 용케 참고 설을 맞으려 했다.
그런데 그동안의 모든 일이 ‘거짓말로 쌓은 거대한 산’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혹은 현재의 시공간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살다온 이의 푸념처럼 들렸다. 청와대란 곳은 시공간이 왜곡되어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설 연휴에는 많은 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 친지와 밥상머리에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등을 놓고 치열한 논쟁까지 벌였을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이 진영 논리로 빠져들고 마는 것은 그들(탄핵이 싫고, 현재의 체제가 유지되었으면 좋을)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거리로 시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설 연휴 이전에 열린 13차 촛불집회에는 전국적으로 35만 명이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추산됐다. 14차 촛불집회에는 42만5천명이 거리로 나섰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증가가 아니다. 2월에는 탄핵이 돼야 한다는 촛불민심의 결집력이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가 다시 동력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크다.
촛불집회의 절정은 지난해 12월 3일에 열린 6차 촛불집회였다. 서울에만 170만 명, 전국적으로 232만 명이 거리로 나섰다. 그 힘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어졌다.
국회에서의 탄핵을 가결시킨 동력이 촛불민심이었음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듯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역시 촛불민심이 가능케 할 것이다. 오는 25일이 D데이다. 민중총궐기가 개최되는 그날 전국적으로 촛불민심이 다시 불타올라 헌재의 탄핵 인용의 불쏘시개 될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촛불민심의 바다가 다시 서서히 밀물이 되어 헌재로 향하고 있다. 4일 열린 14차 촛불집회는 그 시작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14차 촛불집회 현장을 담았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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