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매체박물관에 전시된 활판인쇄기. 서울 을지로 '동신인쇄'에서 사용하던 것을 전시장에 옮겨 놓았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기록' 없는 역사가 있을 수 있을까. 혹자는 야사(野史)가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하겠지만, 이 또한 '항간에서 사사로이 기록한 역사'(고려대한국어대사전)라는 점에서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역사 속에 켜켜이 녹아든 인류의 문명·문화는 기록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필요했던 '매체' 두 가지를 통해 가능했으며, 이 과정 한가운데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박주환)은 13일 도서관·아카이브·박물관 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 '기록매체박물관'을 개관했다.
디지털도서관 지하 3층에 약 920㎡ 규모로 자리잡은 기록매체박물관은 '세상을 깨우는 힘, 기록 매체 이야기'를 주제로 문화·지식·정보를 담고 있는 각종 기록 매체의 가치를 알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기록 매체의 과거와 현재를 통찰하며 더 나아가 그 미래를 꿈꾸기 위해 마련됐다.

박물관 중앙에 설치된 조형물 '책 속의 얼굴'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제공]
기록매체박물관은 전시·체험·교육 공간으로 구성됐다. 전시장 중앙에는 기록문화유산을 소재로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적 원동력을 디지털 시각화한 '책 속의 얼굴'(이이남 作) 조형물이 놓여 있다. 가로 3미터, 세로 2.7m(두상 크기 2.1m x 2.4m) 크기의 이 작품은 인간의 머리, 책의 펼쳐짐 등을 접목한 금속 조형물 표면에 LED 소자를 부착했다. 이 작가는 "기록의 시간과 생각을 주제로 한 다섯 개의 콘텐츠는 기록을 통한 생각의 생명력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200여 점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전시장은 △1부 '기록 매체, 문명을 깨우다' △2부 '기록 매체, 세상을 담다' △3부 '디지털 기억 시대, 컴퓨터와 전자 매체의 등장' 등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기록 매체가 출현하고 발전하는 상황을 선사시대 점토판부터 개괄적으로 조명하고, 2부에서는 문자와 그림묘사 기록방식을 넘어 사진, 영화, 녹음 등 과학의 발전으로 생겨난 기록 매체들을 소개한다. 고래 63종을 비롯해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 307점 이상의 그림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복각품)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라의 목판인쇄술을 보여주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영인본), 1934년 금강키네마사가 제작한 흑백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 등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기록 매체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3부에선 한국 최초의 컴퓨터부터 태블릿 PC까지 컴퓨터의 발전과 저장 매체 변천사를 소개하는 한편 디지털 매체의 취약점도 되짚어 본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는 직원 7명과 자본금 1000만원으로 삼보엔지니어링을 설립했던 이용태 박사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 박사는 1981년 청계천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SE-8001을 개발했는데, 이는 외국의 개인용 컴퓨터를 들여와 리버스 엔지니어링 기법을 동원해 본체와 안테나, 채널까지 달린 텔레비전 수상기를 모니터 대용으로 합체한 컴퓨터였다. SE-8001은 주로 기업의 회계 관리용으로 사용됐으며, 일부가 캐나다로 수출되긴 했지만 대량 생산되거나 판매되지는 않았다.

전시장에서는 한국 최초의 컴퓨터부터 최근의 태블릿 PC까지 연도별로 살펴볼 수 있다. [사진=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체험·교육 공간은 △'옛날 인쇄술 체험' △'추억의 타자기로 쓰는 편지' △'매체를 변환해드립니다' 등 세 가지 과정으로 꾸며졌다.
이곳에서는 목판, 금속활자, 납활자, 등사기 같은 옛날 인쇄 도구를 이용해 시엽서 등을 직접 인쇄할 수 있고, 지금은 사라진 2벌씩 타자기로 편지를 써볼 수도 있다. 또한 과거의 음반, 테이프, 비디오테이프 등 현재 재생할 수 없는 매체를 디지털 변환해 CD, DVD 등으로 가져갈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기계에 생각하는 힘까지 불어넣는 새로운 기록 매체의 등장을 궁금해 한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 미래가 우리 모두가 꿈꾸는 풍요일지, 아니면 또 하나의 거대한 도전일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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